현대인의 일상을 생생히 살려내고, 다양한 동시대의 모습을 싱싱하게 육화하는 소설가 김윤영이 4년 만에 신작 소설집을 낸다. 당대의 문제적인 시공간을 포착하는 솜씨는 깊어졌으며, 그로 인해 표출되는 작가의 의식세계는 선명하게 무르익었다. 『타잔』은 재미와 주제의식을 고루 갖춘 김윤영의 소설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무대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
타잔이 되어 사라져버린 현대인의 탈출과 변신이야기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우리가 길을 걷다 마주치는 어느 누구라 해도 이상치 않을 것이다. 주인공들의 면면이 평범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으려 했기에 얻어진 당대성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꾸자꾸 사라진다. 그들은 왜, 어디로 떠났을까.
『타잔』의 8편 소설에서 김윤영은 현대인들의 이러한 탈출과 변신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외롭고 슬픈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매우 다양하고 독특한 스펙트럼 속에서, 짐짓 무심한 듯 그러나 작은 위로를 건네며 그려 나간다. 약육강식의 투기장처럼 변한 현대 사회를 외면한 채 독방에 갇힌 글쓰기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요즘 문학 풍토 정반대편에서, 단단하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명민한 이론가였던 정의로운 남편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떠난 토론토에서, 아내는 식탐밖에 남지 않은 불평분자 남편을 맞닥뜨리게 된다.(「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 남편을 사랑한다고 거듭 말하고, 남편의 돌연사를 진심으로 슬퍼하며 남편과의 과거를 조용히 회상했던 소설 속 화자(아내)의 행위가 뜻밖의 결말과 함께 드러난다. 남편이 꿈꾸었던 삶이 사실은 실체 없는 허상이었고, 아내의 욕망에 무심했던 독선적인 남편일 뿐이었던 그의 존재가 결말의 반전에 섬뜩함을 더한다.
‘얼굴 없는 사나이’로 지하철 악사가 되어버린 선배를 ‘나’는 좋아했다.(「얼굴 없는 사나이」) 악의라곤 없는 선량함과 가지 않은 길 같은 것은 감히 꿈꾸지 않는 선배의 한결같음을 좋아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선배의 실직과 선배의 실종을 뒤쫓는 나의 시선은 선배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실종된 선배를 지하철에서 보았지만 그는 선배를 외면한다.
캄보디아에서 관광안내원으로 소일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마치 타잔처럼 나무타기를 하는 관광객 마장동 김씨를 만나며 「타잔」은 시작된다. 몇 년 동안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만남을 계속하는 동안, 마장동 김씨는 ‘더 높은 세계’를 욕망하는 아내가 저지른 빚더미에 시달리다 실종된다. 마지막으로 타프롬에서 마장동 김씨를 만났을 때 반미치광이가 되어 있는 그의 ‘다른 세상을 향한 미소’는 ‘잃어버린 내 인생의 방향’과 다르지 않다.
변절한 운동가인 애인과 부양해야 할 가족과 사채이자에 시달리던 ‘여자’는 훌쩍 태국으로 떠났다.(「세라」) 태국에서 ‘여자’는 세라와 “자유에 지치지 않겠다”는 세라의 삶을 보았으며, 쓰나미의 파도 속에서 여자는 그만 세라의 손을 놓고 만다. 그리고 세라의 여권을 가지고 이제 그녀는 세라가 된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훌쩍 비약하거나 흔적도 없이 소멸해 다른 세상을 찾고 싶었던 변신의 꿈, 세라는 그녀가 꿈꾸었던 다른 세상의 이름이기도 하다.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었으나 갈 곳이 없자, 남자는 스스로의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신을 고용한다.(「산책하는 남자」) 남자는 자신의 근무지인 차 안으로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점심시간에는 근처 빌딩 로비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매일 규칙적으로 일대를 산책한다. 그런 남자를 남들은 ‘실업자’라고 부른다. 남자가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 위치가 남들에게 인식되는 존재 위치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남자는 분열된다. 그 분열의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아내를 무시하고, 자신을 알아본 빌딩 수위를 살해한다.
남자가 일탈을 통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일자리는 결국 그 경제논리 속으로 자신을 진입시키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 시스템을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결국은 그 시스템 속으로 ‘주관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를 욕망하는 남자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은 이중적으로 소설 속에 구축된다. 시스템의 바깥이란 없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고아였던 김영옥이 “한국에서 온 예쁜 입양아”가 됨으로써 다른 삶을 얻을 것처럼 꿈꿨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집 없는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잘 나가는 ‘뚜쟁이’ 엄마와 당돌한 딸의 경쾌한 대화 속에 현대사회의 결혼 가치를 되짚은 「검사와 여선생」, 고문 후유증으로 아이를 유산하고 남은 생을 가슴앓이 하는 엄마와 딸, 그리고 유산된 아이의 혼(魂)이 교감하는 과정을 그린 「속삭임, 속삭임」도 각각 특별한 감동을 준다.
오늘, 도시 정글을 헤매는 당신을 일으켜줄 소설
‘다르지만 닮은’ 이 인간들을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태국에서, 한국에서, 토론토에서, 시드니에서 자꾸 마주치게 된다. 멀리 도망칠수록, 세계는 더욱 조여든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는 일상의 이면을 까뒤집는 작가의 표정은 무심하고, 그 무표정함은 오히려 등골 서늘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시스템의 ‘바깥’은 없는 것일까. 출구 없는 생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다만 김윤영은, 세상의 속내를 주시하는 눈길을 놓지 않으려 했던 만큼이나, 타인을 아픔을 꼬옥 껴안는 뜨거운 애정도 놓지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이 출구 없는 세상을 변신시키진 못했지만, 견디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김윤영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와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에 「비밀의 화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첫번째 소설집 『루이뷔똥』을 펴낸 바 있다.
쳇바퀴 속 삶 일탈을 향한 몸부림… ―― 최윤필 기자, 한국일보(2006. 04. 08.)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 "김윤영 타잔" ―― 정천기 기자, 연합뉴스(2006. 04. 06.)
탈주 또 변신 그 씁쓸함에 관한 8인의 보고서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6. 04. 09.)
거듭되는 죽음… 범인은 정글 자본주의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6. 04. 14.)
세필로 그린 '도시 정글' 지옥도 ――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2006. 04. 15.)
평범함의 신화화 ―― 정주아 문학평론가, 컬쳐뉴스(2006. 05. 10.)
독자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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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
2006-06-08 오후 5: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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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윤영은 매일 발행되는 모든 일간지들과 문제적 다큐 프로그램, 사회 고발 르포 기사등등은 놓치지 않고 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한 복판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그래서 이제는 금세 정상에 올랐다 내려가는 그렇고 그런 유행가같은 사회 현상들을 김윤영은 치밀하게 파고들고 있다. 정상에 올랐다 내려가는 유행가들의 행방을 쫓듯 김윤영은 사회 문제와 소설을 매치하여 고민과 놀람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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