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속삭임 (1998)

실천문학 2013. 8. 11. 22:53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 고은의 신작시집. 1958년 등단 이후 시, 소설, 수필 등 전 장르에 걸친 그의 작가적 역량은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이지만, 사람들은 역시나 그를 ‘시인’이라 부른다. 늘 우리에게 새로움을 안겨주는 고은 시인의 왕성한 창작력, 삶의 열정이 엿보이는 시집. 원고의 대부분이 원고지에 쓴 것이 아니라 일간신문에 끼여 있는 광고 전단지에 힘있게 휘갈겨 쓴 것들이다. 시인은 이 시집을 펴내며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심신이 상하여 무위도식하기를 1년여 그 공백 가운데서도 시마(詩魔)는 야릇하게 늘어붙어 이 시집을 이루었다. 외침이나 타령이라기보다 속삭임인 듯하다”고 말했다.

“고은 선생은 이미 30년을 넘도록 문학을 살아왔고,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글쓰기 작업을 진지하게 실천했다. 선생은 어느 한 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던 적이 없다. 항상 삶의 한복판으로 달리며 존재의 의미를 일깨우고, 인식의 눈을 깨우친다. 힘차게 달려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고은 선생의 문학은 때로는 매서운 바람 같다. 바람은 자리에 멈추어서는 순간 그 존재를 잃어버리는 법. 고은 선생의 문학은 바람처럼 휘몰아쳐 온 그 역동적인 의미 때문에 더욱 우리의 가슴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__권영민(발문 중에서)

별과 꽃

하고 많은 세월
하고 많이 별을 이야기해도
별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그냥 거기서
몇 억 광년 전의 별빛을 보낼 따름이다

아무리 꽃을 노래해도
어린 시절 살구꽃을
뒷날 노래해도
그 꽃들은 좀더 오래 피어 있거나
어쩌거나 하지 않고
그냥 거기서
며칠 동안 피어 있을 만큼 피었다가 져버릴 따름이다
아닌 바람에 한꺼번에 져버릴 따름이다

이런 막막한 세상을 우리는
별을 이야기하고
꽃을 노래하면서
나의 별 너의 꽃이라고 가슴 뛰놀고 있다
얼마나 비릿비릿 어린아이들의 늙어빠진 천진난만한 그것인가

__「별과 꽃」(전문)

고은
193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으로,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 승려가 됨. 1962년 환속 이후 시인으로, 재야운동가로 활동.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서다.
시집으로 《피안감성》《해변의 운문집》《제주가집》《문의마을에 가서》《조국의 별》《전원시편》《만인보 1~9권》《머나먼 길》, 소설로 《산산이 부서진 이름》《화엄경》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