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내가 읽은 삶 (2004)

실천문학 2013. 8. 11. 23:38

 

 

 

 

 

 

 

 

              

 

 

 

 

 

 

 

 

 

 

좋은 시에는 추억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추억이야말로 시에 아련하고도 끝 모를 깊이를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가. 해방을 전후한 세대가 공유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씌어진 이 시들은 그야말로 무기교가 기교임을 실감케 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양정자의 시가 그만큼 진솔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시인이 어린애 같은 천진함을 지니지 않고는 근접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사무사(思無邪)란 이를 두고 이름일까. 이 혼탁한 세상을 부대끼며 살아온 이순의 시인이 그처럼 고운 심성을 어찌 간직해올 수 있었을까. 실로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 ―정희성(시인)


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지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나, 꼭꼭 다짐했건만
살아가기 결코 녹록치 않았네
결혼해서 남편과 또 피 터지게 싸워가면서
내 아이들에겐 또 말 못할 상처를 입혀가면서

세상살이에 무능했던 내 부모님을 한때 부끄러워했지만
살아가면서 내 안에 숨겨진 그들의 핏줄을 나 이제
깊이깊이 연민하고 그리워하듯
언젠가 내 아이들도 내 못난 아비 어미를 또
깊이 연민하고 그리워할 것을 굳게 굳게 믿으며

―「삶」

양정자
1944년 서울 출생. 서울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1990년 시집 『아내일기』를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아이들의 풀잎노래』, 『가장 쓸쓸한 일』 등이 있으며, 현재 성산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삶은 글이 되고, 글은 삶 속에 있다 ―― 강지이 기자, 오마이뉴스(2005.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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