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에게 있어 '지구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자본주의적 문명의 시간은 이미 무덤에 다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는
경계를 찢는 새로운 시간을 꿈꾼다. 그는 그것을 천둥 번개의 신이 살아 있는 신화의 시간에서 찾기도 하고, 붕새가 구만리 허공을 나는 장자의
시간에서 찾기도 한다. 또한 대홍수 이후 남은 인간 오누이의 순수한 사랑에서 찾기도 하며, 산과 구름과 달과 별이 식구처럼 둘러앉아 '밥 끓이는
시간'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희망의 냄새'로 읽히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영혼'과 그것들이 짊어진 '슬픔'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과 연민 때문이다. ―윤재철(시인)
나무가 악기인
것은
지워지지 않으려 온몸으로 울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우는 소리
능선을 넘어
온 산을 쏟아져내리는 폭포를
이룬다.
나무가 악기인 것은
지워짐과 지워지지 않음을 넘어
전력을 다해 울기 때문이다.
눈 갠 하늘 아래
기진한
나무들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녹아내린 눈이 가지 끝에 고드름으로 달려 흔들리며
풍경 소리를 낸다.
나무가 악기인
것은
소리의 끝에서 무심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악기인 것은] 부분
김진경
195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집으로 『갈문리의 아이들』, 『광화문을 지나며』, 『우리시대의 예수』, 『별빛 속에서 잠자다』, 『슬픔의 힘』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이리』, 동화 『목수들의 전쟁』, 『고양이 학교』, 『거울 전쟁』, 교육수필집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등을 펴냈다.
2000년 시와시학상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실천의 문학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은 당나귀를 타고 (2005) (0) | 2013.08.11 |
---|---|
가오리의 심해 (2004) (0) | 2013.08.11 |
내가 읽은 삶 (2004) (0) | 2013.08.11 |
백제시편 (2004) (0) | 2013.08.11 |
노독일처 (2004) (0) | 2013.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