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소를 추억하다 들소를 추억하다 조동범 골목길 귀퉁이에 자동차 한 대 버려져 있다 앙상하게 바람을 맞고 있는 자동차는 아직도 보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는지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하고 골목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초식동물처럼 뼈대만 앙상한 자동차 자동차는 무리지어 이동하는 초원의 ..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1.05
태양의 노래 태양의 노래 성 프란체스코 주여, 내 자매인 물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물은 매우 유용하고 겸허하며 귀하고 순수합니다. 주여, 내 자매인 달과 별들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께서는 하늘에 그 깨끗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여, 내 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찬미를..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1.04
태양의 노래 태양의 노래 성 프란체스코 주여, 내 자매인 물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물은 매우 유용하고 겸허하며 귀하고 순수합니다. 주여, 내 자매인 달과 별들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께서는 하늘에 그 깨끗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여, 내 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찬미를..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1.04
청정해역 청정해역 이덕규 여자하고 남자하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 하고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 너무 맑아서 바닷속 깊이를 모르는 이곳 연인들은 저렇게 가까이 있는 손을 잡는 데만 평생이 걸린다네 아니네, 함께 앉아 저렇게 수평선만 바..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1.03
술 익는 치마 술 익는 치마 서상만 시골 온돌방 아랫목이 구들화기에 거머번지르하게 눌어붙은 장판을 보면 생각난다 내 나이 겨우 네댓 살 어머니는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꼬들꼬들하게 식힌 고두밥을 얼금얼금 대충 빻은 누룩에 골고루 썩어 술옹차리에 담고 시원한 우물물을 자분자분하게 부울 때 참깨 한줌 뿌..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0.29
직소포에 들다 직소포에 들다 천양희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淨土)! 나는 ..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0.28
피리 피리 전봉건 손택수ㆍ시인 대나무 잎사귀가 칼질한다. 해가 지도록 칼질한다 달이 지도록 칼질한다 날마다 낮이 다 하도록 칼질하고 밤마다 밤이 다 새도록 칼질하다가 십 년 이십 년 백 년 칼질하다가 대나무는 죽는다. 그렇다 대나무가 죽은 뒤 이 세상의 가장 마르고 주름진 손 하나가 와서 죽은 대..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0.27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0.22
딸에게 딸에게 오세영 가을바람 불어 허공의 빈 나뭇가지처럼 아빠는 울고 있다만 딸아 너는 무심히 예복을 고르고만 있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붙들지 못해서 우는가 보다. 강변의 갈대는 흐르는 물을, 언덕의 풀잎은 스치는 바람을 붙들지 못해 우는 것, 그러나 뿌리침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찌 바다에 이..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0.21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윤재철 달리는 고속 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 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200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