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전집류

땅과 사람의 역사 (1996)

실천문학 2013. 7. 30. 14:25

 

 

 

 

   

 

 

우리 민족문학의 큰 산맥, 작가 조정래의 문학적 진수를 한 권으로 살펴본다. 작가의 문학정신이 집약되어 있는 부분과 가장 돋보이는 묘사 부분, 그리고 의미와 구성상의 완결성이 돋보이는 부분을 엄선하여 수록한 빼어난 작품집이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온전하게 품어 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작가의 전집을 지니고 수시로 읽어보는 것이리라. 그러나 전집의 분량이 수십 권에 달할 경우에는 아무리 부지런한 독자라도 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두루 섭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도 전집을 내놓지 않은 작가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민족문학의 큰 획을 그은 『태백산맥』 10권과 『아리랑』 12권, 그 외에 다섯 권의 작품집과 세 권의 장편소설을 내놓은 우리 시대의 작가 조정래의 방대한 작품 중 빼어난 부분들만 뽑아 『땅과 사람의 역사』를 펴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격과 사상이 옹글게 갈무리된 책 한 권을 품에 안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엮은 문학평론가 황광수 씨는 머리글에서 “조정래의 방대한 작품들 가운데 빼어난 부분들을 가려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려니와 이 일의 어려움을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유기적 생명체와도 같은 작품들에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의 조심스러움은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작가 한 사람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만 된다면, 이러한 모험은 해볼 만한 게 아닐까?”라고 이 책을 엮어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내게된 배경을 피력하고 있다.
수록 내용의 선정은 작가의 문학정신이 집약되어 있는 부분과 가장 돋보이는 묘사 부분, 그리고 의미와 구성상의 완결성이 돋보이는 부분을 선택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선정을 하였음에도 한 권 분량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줄이느라 여러 가지로 고심한 끝에 책 전체의 구도로 보아 내용상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선택된 부분이 너무 길 경우 주제에서 벗어난 대목을 생략하는 등의 방법으로 한 권 분량을 가려낸 후 이 책의 ‘차례’와 같이 다섯 갈래로 나누었고, 개별적인 글들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도록 작은 제목들을 붙였다.

또한 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억압된 기억의 해방과 역사의 지평」은 단편적인 글들 사이의 전체적 연관성을 감지한 글로, 조정래의 문학과 인생을 한눈에 조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로 완성된 우리 역사의 진실
조정래의 많은 작품들이 우리 시대의 독자들을 가장 폭넓게 사로잡은 원인은 한마디로는 설명될 수 없지만, 그것은 분단시대의 이념적 질곡에서 비롯된 반공적 시각을 완전히 극복하고 6,25가 이념적 동기나 강력한 외세의 충돌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제식민지시대로부터 축적되어온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밝혀낸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정래가 도달하고 있는 이러한 역사인식은 분단 이후 지배세력의 이념공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민중운동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삶의 현실로 밑받침해 주었다는 점에서 80년대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공감을 이끌어냈으며, 그러한 공감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삶을 통한 역사 드러내기’는 작가에게 풍요로운 문학적 형상화의 질료를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역사’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적 완성에 이르게 하는 데 큰몫을 감당했다.
이와 더불어 조정래는 기층민중의 시각뿐만 아니라 중간지식인들의 그것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들로 하여금 좌우익 모두에 대해 적절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당시의 이념적 갈등과 투쟁을 객관적으로 해석해내게 함으로써, 소설의 인물구성과 이념적 지도에 균형감을 제공하였다.
조정래는 밑바닥 인생들을 그려내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작가다. 쟁기질을 배우는 아낙네나 뻘밭에서 뒹구는 아이들, 역전이나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나 미친 사람들에 대한 묘사 등은 읽는 이들의 가슴에도 그들의 고통과 한이 흘러넘치게 한다. 부모를 잃고 누이동생과도 헤어진 어린 차득보가 거지 노인한테 장타령을 배우는 장면에서는 장타령을 부르며 어깨를 추석이는 작가의 모습을 얼핏 본 듯도 했다. 이러한 몰입 없이는 그만한 실감을 창조할 수 없었으리라. ‘민중적 삶의 공감’이라 불러도 좋을 이러한 실감들이 간과되지 않고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은이 조정래
전라남도 승주군 선암사에서 출생하여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 왜곡된 민족사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시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엮은이 황광수
문학평론가. 1944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길사 및 월간 <사회와 사상>, 계간 <민족지평>, 격월간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 주간을 역임했다. 현재 실천문학사의 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문학평론집으로 『삶과 역사적 진실』, 역서로 막스 더블린의 『왜곡되는 미래』가 있다.

1. 땅의 역사
백두에서 한라까지/농민현대사/쫓겨난 노비의 꿈/배고픈 계절/팔월의 들녘/지리산의 낙조/말 탄 일본인, 자전거 탄 조선인/갈대밭을 일구는 사람들/지주를 위한 씻김굿/소작인의 뇌물

2. 여인들의 세계
매파와 실랑이하는 어머니/토하 잡는 여인들/할머니의 마음/밥짓는 여인/꽃, 여인의 마음/성의 볼모가 된 빨치산의 아내/은밀한 인민재판/몸씻김굿/암탉과 병아리를 보는 눈길

3. 달라지는 세상
“왜놈 발에 발통 달기”/일본말을 배워라/적의 품에서 자라난 청년/사탕공장/미선소/‘부두장사’ 또는 ‘만보귀신’/출세의 길-친일 제3세대/두 개의 패권주의/친일경찰의 ‘해방’/부자상봉/빗나간 반항아/“죽어서도 빨갱이여!”/전기가 들어온 마을

4. 박토에 남은 사람들
장타령을 배우는 아이/목놓아 불러보는 “아버지-”/뻘밭에서 뒹구는 아이들/쟁기질하는 여인/고향말에 가슴 트이는 칼갈이 노인/혼혈 처녀의 슬픔

5. 부록
조정래의 문학과 인생-기억의 해방과 역사의 지평/작가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