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일반

반대자의 윤리 (2006)

실천문학 2013. 8. 2. 10:51

 

 

 

 

 

   

 

 

 


인문학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일원인 등단 6년차의 젊은 문학평론가 고봉준이 첫 평론집 『반대자의 윤리』를 펴냈다. 비평이라는 행위를 ‘공명(共鳴)’ 현상이라 믿는 저자는, 작품과 비평의 간극을 정직하게 드러내 작품을 객관화시키지 않을 때 그 공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대’는 하나의 입장인 동시에 입장 유예이며, ‘윤리’란 이념의 부재를 견디는 문학적 방식이자 공명의 한 표현이라는 뜻에서 그는 『반대자의 윤리』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렇듯, 문학과 문학을 둘러싼 크고 작은 담론들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그에게 일종의 사명감으로 자리한다. 기존의 담론과 문학권력을 해부하는 메타비평에서 개별 작가론과 주제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 한국문학이 자리한 길과 지향점을 고봉준의 거침없는 비평을 통해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6 우수문학도서


1부 ‘비평이라는 사유’ 는 비평적 모색의 성격이 강한 메타비평들의 묶음으로, 문단 내 담론들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비평이 작품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단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1부를 관통한다.「비평의 윤리와 질타의 정신」에서는 자사의 홍보장으로 뒤바뀌고 있는 시평란을 중심으로, 문학권력에 매몰되어버린 비평의 부재를 비판하고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출판상업주의와 작품에 대한 해설적 비평, 텍스트주의적 해석에 안주하려는 유행은 작품의 가치평가를 생명으로 하는 비평의 직무유기와 같다. 고봉준은 비평이 독백이 아닌 대화적인 기능을 되찾아야 하며 비평은 작품의 진실과 비평 주체의 사유를 함께 드러내는 행위임을 역설한다. 작품의 진실이란 텍스트 내에 아로새겨진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비평의 주체가 대상 작품을 통해 구성한 사유의 궤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평은 친절한 해설이나 설명이 아니라 비판적 평가, 다시 쓰기이다. 「리얼리즘 / 모더니즘의 신비화」는 리얼리즘을 한국의 지형에 맞게 안착시키는 과제를 논하고 있으며 「텍스트주의를 넘어서」에서는 문학의 위기는 독창적인 작품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 뿐, 시장 논리에 의해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장과 우상」에서는 팽배하는 문학상과 문화산업의 이면에 숨은 상업적인 의도로 인해 문학의 진정성이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을 낱낱이 해부하여 드러내고 있다. 각각의 문학상이 고유한 색을 지니지 못하는 까닭은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과 실험보다는 스타 작가들을 중심으로 수여되고 출판사들은 문학상 제도를 통해 문학적 권력을 강화하며 상업적 이익을 노리기 때문이다. 문학상이 진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상업적 제도적 강박에서 벗어나 정당한 관리 아래 고유의 특성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 고봉준이 제시한 해법이다.

2부 ‘이방인의 언어들’ 에서는 평론가 고봉준이 비평적 글쓰기를 통해 함께 호흡하고자 했던 동시대의 개별 시인, 작가들에 대한 평론을 모았다. 문학으로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김수영, ‘비시주의’를 도구삼아 저항의식을 표출한 황지우, 유년의 기억을 통해 지속적인 시간을 노래한 손택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타락을 발견한 김신용, 사랑시의 연금술사 채호기, 사이버 시대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한 이원, 환멸에서 건져 올린 생명을 표현한 박영근, 등단작에서 묘파했던 백무산 등 여러 시인론과 소설가 김연수에 대한 작가론을 포함, 9편의 비평이 수록되었다. 각각의 비평에서 고봉준은 유려한 필치와 날카로운 분석, 텍스트에 대한 세세한 분석을 통해 우리 시대 작가들의 시대적 의미를 밝힌다.

3부 ‘입장들’ 은 고봉준의 개인적인 문제의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비평의 모음으로, 2000년 이후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제기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 작업이기도 하다. 「그녀들의 모노드라마」에서는 고백과 독백이라는 문학적 장치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낸 1990년대의 여성 소설을 신경숙, 조경란, 공지영, 김형경, 공선옥 등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아우른 작가들을 중심으로 묘파한다. 「환상이라는 유령, 또는 환상의 리얼리티」는 ‘환상성’에 경도된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리얼리즘을 논하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리얼리즘은 현대에서 감각적 차원의 실재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으며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 이영주의 시는 그 증명인 셈이다. 「근대의 바깥을 사유하는 시의 세 가지 형식」은 1960년대 김수영에서 시작된 ‘근대’에 대한 미학적 비판이 황지우, 최승호, 이하석, 백무산 등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하게 변주하는 양상을 드러내면서 근대적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오늘의 우리 문학에 주어진 시대적 소임임을 역설한다. 「서정시를 위한 변명」은 김행숙, 신형철, 이장욱의 평문에 대한 일종의 메타비평으로, 작품의 진리와 비평을 진리를 제대로 일구어내 ‘평가’로서의 비평 윤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서사, 기억과 망각의 갈림길」은 상처와 기억의 지배를 받아온 1990년대의 후일담과 고백체 문학이 회상과 망각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박민규, 김영하, 성석제의 소설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문학이 오직 상처에 대한 보고서이며, 인간의 정체성이 시간적 연관성만으로 형성된다는 논리를 넘어 상처가 미래적 삶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개입하는지를 보여준다. ‘양안(兩眼)의 객관성보다는 외눈박이의 일면적 진실을 신뢰한다’는 고봉준의 비평적 윤리는 그의 첫 비평집에서 이렇듯 과감하고도 충분하게 구현되고 있다.

 

고봉준
1970년 부산 출생. 2000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평론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의 넘어서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공저로 『들뢰즈와 문학 기계』(소명, 2002),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문학과 경계, 2002), 『한국 문학권력의 계보』(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4), 『비평, 90년대 문학을 묻다』(여름언덕, 2005) 등이 있다.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반년 간 『작가와 비평』, 민예총 웹진 <컬처뉴스>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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