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일반

인공낙원의 뒷골목 (2006)

실천문학 2013. 8. 2. 10:48

 

 

 

 

    

 

 


여러 평론가들과 함께 문학권력 논쟁을 주도한 바 있는 홍기돈이 평론집 『인공낙원의 뒷골목』을 묶어냈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 주류문학이 ‘내면성의 옹호’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무분별한 욕망을 옹호하는 지경으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인 급속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좌표와 방향을 상실한 채 그저 수사의 차원으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런 문제들이 출판자본의 상업적 체계 안에서 은폐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 세계는 마치 욕망만이 중요하게 들끓고 있는 ‘인공낙원’처럼 그려지는 실정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평론집의 제목에는 그러한 문학 뒤에 감추어진 이면을 읽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


논쟁과 성찰―문학이란 무엇인가

제1부 ‘아르고스의 눈’에는 논쟁적인 글들을 모아놓았다. 문학권력 논쟁을 주도했던 평론가답게 논리가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사실은 저자가 논쟁의 지평을 시종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문단의 여러 현상들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이를 문학의 존재 근거와 연결시켜 근원적인 성찰을 한다는 데 특장이 있다. 문학권력 논쟁이 문단의 부끄러운 이면을 단순히 폭로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제1부에 실린 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학권력 논쟁」은 『문학동네』 2001년 여름호 특집 ‘비평과 권력’을 비판하는 글이다. 당시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측에서는 대체로 무반응으로 일관하였고, 대응을 했더라도 극히 산발적이었다. 그러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문학권력의 입장에서 특집을 마련하였고, 여기에 대한 반박의 입장을 표명한 글이 「문학권력 논쟁」이다. 이 글이 발표된 이후 문학권력 측의 반응은 다시 침묵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하니, 이 글은 당시 논쟁에 대해 어느 정도의 완결된 이해를 돕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정투쟁의 욕망과 ‘새로움’이라는 블랙홀」은 2000년대의 ‘세대론’을 비판한 글이다. 우리 문단에는 10년을 단위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그렇게 하여 ‘신/구’가 나뉘는데, 이러한 방식의 문단/문학 이해의 바탕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성급한 욕망과 상업적 계산이 개입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990년대의 신세대론이 특히 그러하였고, 2000년대에는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현재 펼쳐지는 문단의 질서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지금 시기 한국문학의 한 측면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글이다.

「누가 ‘부패의 정원’을 가꾸는가」는 강준만 권성우의 『문학권력』 서평이다. 강준만이 문학권력 논쟁에 뛰어든 데 대해 당시 문학권력 측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한국문단의 부패를 고발하던 이들 또한 강준만의 개입에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과학의 입장에 갇혀 있다 보니 문학-제도의 수준에서만 논의를 펼칠 뿐 문학-정신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킬 수 없었던 강준만의 한계는 인정해야 하지만, 그러한 한계가 강준만이 지적하고 있는 문학-제도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덮을 수 있는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으며, 더군다나 강준만이 모아놓은 자료는 시인, 작가, 평론가, 문학담당 기자들이 써놓았던 것들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도 역시 문학권력 논쟁에 대한 홍기돈 나름의 입장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을 하는 강준만과의 차별성도 읽어낼 수 있다.

「일제가 남긴 제정일치의 화인(火印)」은 서정주의 상상력 구조를 분석한 글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문학인의 친일 여부를 따지는 일은 그를 단죄하거나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상의 의식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가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여 저지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친일로 나아갔던 서정주의 경우 찬양의 대상이 해방 이후 이승만, 군사정권의 최고 권력자로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상상력(인식)의 구조적 상동성이 존재한다.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로 떠올랐던 창비무명인의 『국화꽃의 비밀』을 대상으로 하여 홍기돈은 이러한 시각을 펼쳐나갔다.

「심우도(尋牛圖)를 보며 문학권력 논쟁을 말하다」의 부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저자는 우리 근현대사의 부박함 탓에 ‘권력=타락’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으며, 그래서 권력을 이야기하는 문학권력 논쟁에 대해서 또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가 많음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문단과 이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권력의 문제를 우회할 수가 없으며, 더군다나 문학이 제자리를 잃어 이윤을 낳는 산업의 방향으로만 비대해져가는 현실에서는 그런 사실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죽음인가. 저자는 1990년대 초반 현실 변혁의 의지가 현실의 두꺼운 장벽 앞에서 무너져가면서 이 땅의 젊은 시인․작가들이 죽음의 방향으로 내달렸던 것을 타락한 현실 속으로 차마 들어갈 수 없어서 그 바깥을 지향한 결과로 본다. 죽음의 질서에서 삶의 질서로 되돌아오면서, 불합리하게 구축된 삶의 질서와 문단의 질서 속에 나름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홍기돈의 변화 과정을 이 글은 보여주고 있다.


변화와 모색―찬란한 문학정신을 위하여

제2부 ‘우리 시대의 오디세우스들’에는 흔히 ‘불의 시대’로 일러지는 1980년대를 뜨겁게 끌어안았던 시인, 작가들의 변모 과정을 살피고 있다. 우리는 영웅담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1980년대 이후 급박하게 변화해나간 시대 분위기 안에서 하나의 극에서 반대편 극으로 내려앉았던 이들로서는 내면에 커다란 상처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처를 감당하며 나름의 길을 모색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 않으면서 찬란했던 하나의 정신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시켜나간 안상학, 방현석, 김성호, 김영현의 면모를 제2부에서 살펴보았다.

제3부 ‘시간의 긴 그림자’에는 홍기돈의 취향이 드러나는 글들을 묶었다. 「제의의 시간, 태양의 사제」에서는 권혁웅의 『황금나무 아래서』를 대상으로 하여 사랑에 대한 저자의 감정과 인식을 드러낸다. 이 글은 시인으로부터 “자신의 시집을 가장 제대로 읽어낸 평론”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물 위의 집」은 중․단편소설을 통해 이문열 미의식의 변모 과정을 분석한 글이다.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선택해나가는 이유, 1987년 6월항쟁 분위기에 접하며 내비친 진보적 방향으로의 선회 가능성, 1987년 6월항쟁의 실패 후 나타난 현실과의 착종 과정 등이 흥미롭게 분석되어 있다.

「죽음을 넘어 살아오는 투탕카멘 미라의 눈」에서는 자본주의와의 쟁투를 관념적으로 벌이고 있는, 그래서 희귀한 한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작가 엄창석을 다루었으며, 「신목(神木)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끝장내고」에서는 여성주의 국가 욕망의 관점에서 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이성아의 『절정』을 분석했다. 그리고 「죽음의 후광을 넘어서기 위한 단상」에서는 기형도의 죽음과 시 세계를 개인의 신화적 차원으로 이끌어갈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홍기돈 _ 1970년 제주 출생. 199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다. 당선작은 「그림자로 놓인 오십 개의 징검다리 건너기. 한강론」. 이후 『비평과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며 ‘문학권력 논쟁’을 펼치기도 하였다. 여러 평론가들과 함께 써낸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2)는 그 속에서 나온 성과이다. 연구서로는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탈식민주의를 넘어서』(소명출판, 2006)를 내놓은 바 있다. 개인 평론집으로는 『페르세우스의 방패』(백의, 2001)가 있으며, 박사학위 논문 『김동리 연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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