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으로 비평활동을 시작한 저자의 일곱 번째 저서이자,『역사의 천사』(2001) 이후 약 6년여의 성찰적 시간과 의식의 공간을 지배해온 ‘생태아나키’를 키워드로 상자한 비평집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문학읽기 방법론을 모색해온 저자의 비평작업이 비로소 하나의 수렴을 향해 있는 듯하다. 수록한 글들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의 사회와 문화를 겨냥한 의식의 향연을 펼쳐 보여주는 바, 그 글들의 전개를 위한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는 세 어휘는 ‘생태’ ‘아나키anarchy’ ‘지역(주민)자치’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여기서의 생태는 사회생태론(머레이 북친)과 밀접한 '관계의 휴머니티'를 전제로 하며, 아나키는 자유와 자율을 근간으로 가능한 작은 단위의 사회조직을 바탕으로 한 실존의 사회적 삶과 의지를 강조한다. 이 두개의 고리가 순환적으로 피드백될 수 있는 현실가능한 사회적 삶이 실은 주민자치의 정치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번 비평집의 부제가 ‘더 나은 삶과 문학에 관한 에세이’인 이유도 이로부터 기인한다.
시대와 불화하는 영혼들을 위한 성찰적 독서의 기록. 생태 아나키스트의 문화 그리고 문학 읽기
신철하 미완의 시대와 문학 ―― 민왕기 기자, 강원일보(2007. 06. 09.)
글들의 행간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안정된 시선을 지니지 못한 내 삶의 위태롭고 불안하며 갈등하는 회한들이 넘쳐나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내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열정적으로 읽고 해석하고 마침내 개입했던 비평적 행위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절실한 요청에 부닥쳤을 때, 근대 초기로부터 1970년대까지를 곱씹어 읽는 일을 느꼈던 회한은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문학의 종언’과 같은 폭력적 (야만적) 문구와 상관없이 나의 문학적 ‘제엘레(seele)'를 불러내게 하였다.
말하자면 이 글은 그런 나의 기억해야 할 한 시기를 전후한 성찰적 독서 과정의 부끄러운 파편적 편력이다.
_「머리말에 대신하여-야만의 거리에서」 중에서
물경 10페이지에 달해 피력된 ‘머리말’을 대신한 글은 비평집 전체를 아우르는 소회를 담고 있다. 책 출간 직후, 필자는 사석에서 우스갯소리 삼아 ‘머리말을 삼백 매쯤 쓰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다분히 농담조이긴 했으나 필자가 현 단계,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세태에 할 말이 많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생태 전문 월간지’의 편집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저자의 이력에서 짐작되기도 하거니와, 문화․사회 전반의 비평적 잣대를 생태 아나키적 관점으로 살피는 저자의 시각은 소중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먼 이국에서 얼마간의 물리적이고도 심리적인 거리를 둔 채로 돌아본 한국사회의 정치․문화 현실과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의 시기를 겪고 있는 현 시대의 한국문학을 되짚어보는 특별한 문화비평집이라 하겠다.
「야만의 거리에서」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연다. 말 그대로이다. 지난해, 머물렀던 미국에서 지금은 잊혀진 ‘LA폭동’을 되새기며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 행태들을 오버랩한다. 당연히 저자가 서 있는 곳은 ‘야만적’인 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발 딛고 선 ‘거리’를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라 규정한 저자가 가닿은 곳이 ‘생태주의’와 ‘아나키’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1부가 종합 비평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2부와 3부는 각기 시 비평과 소설 비평으로 세분된다.
저자의 비평적 시각이 가장 돋보이는 지면은 1부의 글들이다. 생경한 서구의 문학이론을 잣대 삼아 우리의 문학작품들을 끼워 맞추는 듯한 작금의 비평 형식들과 비교였을 때 신선하기까지 하다. 특히 저자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있었던 북한과 관련된 한 심포지엄에서의 단상에서 출발하여 『광장』과 『푸른 혼』의 의미로 이어지는 「다시 분단체제를 생각한다」는 창작과 현실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절대 전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문학을 비평하는 행위 또한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비평집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생태’는 저자가 인식하고 있는 회생 불능의, 문학과 현 시대를 위한 절실한 대안이다. 끊임없이 시도되어온 ‘근대 지상주의’에 내포되어 있는 ‘지적 폐쇄성’이나 ‘장르적 한계’를 넘어 이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키워드로 등장한 ‘탈근대’에의 지향은, 생태주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학과 문화운동을 아우르는” “미학”으로서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미완’의 시대와 문학을 성찰하는 저자의 표면적인 진단은 암울하다. 그러나 에세이스트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저자의 완곡어법에 감추어진 위트와 기지 어린 글의 이면에 가라앉아 있는 ‘미완’의 시대와 문학은 현재진행형이며, 해서 아직은 희망적이라 보아도 될 듯하다.
1959년 충북 충주생. 『자연과생태』 편집위원. 저서로 『비평과 형식』, 『수상』, 『상징과 해석』, 『역사의 천사』, 『문학과 디스토피아』, 『푸른 대지의 희망』 등이 있다. 현재 강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야만ㆍ폭력 넘치는 사회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 서진우 기자, 매일경제(2007.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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