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곤혹 사이’라는 제목은, 텍스트의 호흡에 공감하고자 하는 욕망과 동시대 문학의 지형도를 그리려는 시도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평론가의 자화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미 세 권의 평론집을 출간하고 또 제7회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 평론가 고인환에게 ‘근대적 일상’의 문제는 지속적인 문학적 화두로 기능한다. 작가의 치열한 ‘부정 정신’은 늘 평론가로서의 자의식을 환기하며, 문학은 ‘지금 여기’의 일상을 통해 ‘현실 너머’를 꿈꾼다. 그 위에 평론가로서의 글쓰기를 포개는 일은, 문학과 함께 근대적 일상을 견디는 작업이기에 고통스럽지만 즐겁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에게 있어 글쓰기는 근대적 일상에 깊숙이 침윤된 동시에, 그러한 상태를 거부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의 다른 이름과 같다.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는 문학의 운명’을 체현하는 수단인 셈이다.
공감과 곤혹, 혹은 매혹과 곤혹 사이에서 글쓰기
문학적 삶이 무엇인지 되새겨본다. 문학과 함께하고자 한 초심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학과 일상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칭얼대고 보채기보다는, 점점 흐릿해지는 문학의 ‘아우라’를 좇아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는 문학과의 대화인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_「책머리에」 중에서
네번째 평론집을 펴내면서도 저자는 여전히 현대문학과 근대성에 대해 치열히 고민하며 겸손한 구도의 자세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로 ‘읽히는 평론’으로서의 묘미 또한 돋보이는 평론집이다. 고인환의 평론 속에서 문학은 단순히 텍스트 분석의 대상이라는 지평에서 벗어나, 사회적·문화적 일상과 분리될 수 없는 유동성을 지닌 하나의 개체로 거듭난다. 치밀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다듬어진 고인환의 평론은, 텍스트와 그를 둘러싼 현실을 자유로우면서도 섬세하게 오간다. 끝없이 반성하는 자세로 문학적 삶과 문학에 입문할 당시의 초심을 돌아보며, 문학과 일상 사이의 균형감각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의 치열함이 전편에 수놓인, 문학과의 대화와 자신과의 싸움으로서의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그리하여 문학의 속성이 지닌 매혹과 곤혹을 오롯이 드러내는 평론집이다.
문학의 저변을 아우르며 근대적 일상을 심문하다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우리 문학의 저변을 탐색한 글을 묶은 1부에서는 개별적인 텍스트 분석을 통해 저자의 이러한 시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괴물처럼 근대인을 짓누르는 일상, 우리 시대 소설에 투영된 대학의 풍경, 남북문학의 이질성과 문학 교류의 방향,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탈북자들의 삶, 험난하지만 꼭 가야 할 문학의 가시밭길 등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작아지는 우리 문단의 현주소를 나름의 방식으로 반성한 작업의 일환이다. 근대 담론에 대한 탈주와 저항을 오가며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인 정지아·이명랑·김재영 등의 2000년대 소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특히 문학 평론에서 소외되고 있는 남북문학이나 탈북자 소설에 심도 깊게 접근해, 사회 현상학을 아우르며 문학적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문학이 죽어가는 시대에 ‘진실된 거짓말’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정직한 삶의 태도임을 역설하며 문학이라는 ‘가시밭길’을 걷고자 하는 청소년들을 독려하는 글 또한 이 평론집의 특장적인 부분이다. 2부는 근대적 일상과 마주 선 서사의 모험에 대한 추적이다. 화려하거나 특별하게 눈에 띄지는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소설의 운명을 감내하는 작가들. 문학의 위기 담론이 무색할 정도로 진지한 그들의 ‘문학적 수도’의 자세에서 우리 문학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업작가’의 위상이라는 문학 사회적 현실(손홍규론), 근대적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명암(장정희론), 일상 속에서 변주되며 중첩되는 광주의 이미지(박상률, 「나를 위한 연구」), 박철·함정임·김탁환·이재웅·김윤영 등의 작품론,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되새김 등과 더불어, 최근 효과적으로 문학에 적용되는 정신분석학(김형경 「천 개의 공감」)과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고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알레고리가 근대적 일상과 문학이라는 대주제 아래 편입되고 있다.
1, 2부가 일상과 사회적 연관 속에서 서사와 근대성, 문학의 자리를 모색하고 고민하는 자리였다면, 3부는 우리 시대 서정의 길 찾기를 ‘공감과 곤혹’의 자의식으로 엿본 다양한 시론時論들의 모음이다. 취향이 작품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작용하는 ‘곤혹’감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감수성을 탓하면서도, 저자는 ‘젊은 시인들의 서정적 모험’에 공감하려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한다. 최정란·고영·조민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며 전통 서정과 단절되었으나 새로움의 이면에 깔린 서정의 흐름을 기대하고, 2006년 등단 시인들의 신작시를 감상하면서 설렘과 두려움을 오간다. 이어 ‘전망 부재의 시대에 눈물겨운 소통’을 호소하는 박두규의 시, ‘곰삭임의 미학’이라는 어구로 대변되는, 정제된 형식미를 바탕으로 현실 인식과 상상력의 팽팽한 긴장을 조탁하는 신용목의 시세계, 늦깎이로 등단한 강정숙과 전통 서정의 본령을 충실히 따르는 조예린, 느림 속에 삶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가로놓는 이상복의 시편들, 초월을 향해 치열한 자기 모색을 감행하며 새로운 감수성을 발현하는 이영춘의 시, 최초의 노동자 시인으로 불리었으나 요절한 박영근의 작품세계 등에 대해 저자는 부드러운 칼날을 밀어넣어 우리 문학의 현재를 되짚어보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는 우리 현대 시사와 연관해 정신주의의 외연을 확장한 선배 평론가 최동호의 현장비평 작업을 논한다. 인간과 시의 서정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믿음이 교차하는 최동호의 정신주의 비평이 남긴 궤적을 따라가며 저자는, ‘조화와 균형의 시학’을 발견하고 죽비 소리로 삼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러한 경외감의 토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시의 외연을 확장해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잇는 동양시학을 확립하기를, 한국 현대시사를 정신주의의 관점에서 기술하기를 기대하는 과제를 부여하는, 동료 평론가로서의 당부를 잊지 않는다.
고인환_1969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예천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 『결핍, 글쓰기의 기원』, 『말의 매혹:일상의 빛을 찾다』,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성 연구』,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공저), 『메밀 꽃 필 무렵』(편저)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7회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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