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일반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 (2011)

실천문학 2013. 8. 2. 11:38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장 문학평론가 오창은이 두 번째 평론집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를 상재했다. “끊임없이 문학의 가치에 대해 회의함으로써 문학의 가치를 옹호”했던 첫 평론집 『비평의 모험』에 이어 6년 만에 펴낸 것으로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국가와 그에 속한 시선들에 의해 모욕당한 자들을 감싸 안고 포월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불가촉천민이 되어 있는 외국인노동자 및 아시아적 시선과의 연대를 살펴본 1부,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의 기획을 다룬 2부, 6 ․ 15공동선언 이후 변화된 분단 현실의 재인식을 요구하는 3부, 체제 바깥의 상상력을 통한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논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굵고 묵직한 주제비평집이라 할 만하다.


모욕당한 자들의 시대에 모욕 없는 자존의 사회를 꿈꾸다

‘국경을 넘는 자의 윤리’란 제목으로 묶여 있는 1부는 김정환과 이시영, 하종오 등 폐쇄적 분단국가의 국경을 넘어 ‘세계시민’의 길을 경험한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국가와 세계시민’의 관계 속에서 변모하는 우리 시대의 심성을 살피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여행 · 매체 · 이주의 세계화’ 이후 우리 사회 내에서 싹트고 있는 ‘바깥으로부터 온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윤리적 성찰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는 주지하다시피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통해 ‘바깥으로부터 온 정체성’을 경험하게 되었다. 「연민을 넘어선 윤리」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정의되는 우리 경제의 최하층부에서, 온몸으로 ‘자본의 폭력’을 감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다룬 박범신과 김재영의 작품을 살핀다. 저자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자기중심적 시각으로 이주노동자를 바라보아 온 편향된 인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즉 ‘착한 이주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단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주노동자를 재현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재발견」, 「공간의 감수성과 제국의 감각」에서는 ‘시공간의 압축성’으로 인해 최근 우리 문학의 새로운 주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를 재발견한 작품들을 면밀히 고찰한다. 저자는 이 작품들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감수성의 변화’를 통해 마음의 경계를 넘어 연대적 관점에 입각한 국제주의적 감각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2부에서는 현 국가체제의 ‘일상을 식민화하는 경제성장주의’와 이에 대응하는 문학의 정치적 자율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검열의 내면화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을 통제하려는 국가권력에 맞서 작가와 예술가들이 ‘표현의 자유’, ‘다른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경쟁과 성장을 불문율처럼 여기는 현재의 풍토에서 건강하게 정치적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바깥의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 지구적 유일체제가 되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에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을 상상함으로써 ‘모욕 없는 자존(自尊)의 사회’를 향한 바로미터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문학의 정치성이라고 말한다.
3부 ‘분단시대와 재인식’에서는 2000년대 이후 남과 북의 문학작품들의 변화 양상을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인식의 틀과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분단 디아스포라와 민족문학」에서는 6 ․ 15 공동선언과 홍석중의 『황진이』 출간 등 분단문학에 영향을 끼친 주요사건들 이후 분단문학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남과 북의 문학 모두 분단 디아스포라에 무게의 추를 두며 변화해왔고 지적한다. 그러나 북이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신념화한 디아스포라의 전형’인 비전향장기수를 다룸으로써 위안의 서사를 구축하여 문학의 기능적 효용성을 통해 사회통합을 꾀했다면, 남은 내면화된 ‘반북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통일 유보형 서사와, 분단 상처형 서사, 신감각형 서사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상반된 모습으로 변화해왔다. 이와 같은 태도의 차이는 단일민족국가의 당위가 60년의 간극을 넘어 실제로 만나면서 확인한 심각한 균열 때문이다. 저자는 이 균열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의 민주주의적 변화에 기반한 문화 통합에 대한 논의가 심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4부에서는 체제의 바깥에서 상상하고 사유했던 시인과 작가들을 들여다본다. 폐쇄적인 ‘민족주의 리얼리스트’라고 간주되어온 신동엽이 반체제를 넘어서는 비체제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었음을 증명하고 한때는 흔했으나 이제는 귀해진 시적 주체인 송경동의 시세계를 주목한다. 또, 전근대적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라는 혹평을 들었던 이문구의 연작소설 『우리 동네』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 동네』가 농촌공동체가 급격히 해체되던 시기를 대상으로 ‘농업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평한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근대문명과 경쟁 원리로 인해 마비된 인간 공동체의 핵인 윤리적 감각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촉구한다.


 

오창은은 1970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돼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 『탈식민의 텍스트, 해방과 저항의 담론』, 『한국문학권력의 계보』 등이 있고, 「1960년대 소설의 4․19혁명 관련 양상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무크지 『모색』 편집위원이다. e-mail__longcau@hanmail.net

 

책머리에

1부 국경을 넘는 자의 윤리
한국시는 세계시민을 감각할 수 있을까
연민을 넘어선 윤리
아시아의 재발견
공간의 감수성과 제국의 감각
한국문학과 국제적 연대

2부 국가와 문학
‘미학의 정치’를 둘러싼 징후들
국가와 예술가, 그리고 표현의 자유
역사소설과 이데올로기
통치의 기법, 감염된 문학
벌거벗은 희생양들

3부 분단시대의 재인식
분단 디아스포라와 민족문학
통일 누아르와 분단 상업주의
북조선문학, 낮은 단계의 소통을 꿈꾸다
문화 통합을 위한 ‘두 개의 문학론’

4부 체제 바깥 다른 세상
시적 상상력, 근대체제를 겨누다
아고라의 언어
근본주의적 세계관과 연대의 감수성
지식인 작가 되기의 곤란함
나쁜 문학과 세련된 리얼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