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와 한국 미디어 정치의 현주소
한국 민주화의 과정과 미디어의 정치적 역할 및 그 상관관계에 관한 책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2002년,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통해 대통령에 오른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후 탄핵사태로 촉발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가는 실천적 과정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본 일본인들이 한국 정치사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쉽도록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현재 홋카이도대학에 재직 중인 한국인 교수 현무암으로 2005년 출간 당시 일본 내 정치인 및 관련 시민참여단체와 언론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노무현 시대와 디지털 민주주의』는 일본어판에 최근의 한국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더해 한국어 증보판으로 출간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직 진부한 말이 아니다”
매체 변화와 한국 민주주의 약사(略史)
2009년, 우리는 두 전직 대통령을 분노와 슬픔 속에 함께 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을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으로 기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공짜도 없고 한꺼번에 여러 단계를 건너뛸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퇴행 혹은 역행은 쉬운 일임을 우리는 현 정권 들어 실감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앞두고 그에 관한 새 책은 물론 관련 책들이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간 노무현을 추억하는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한국 정치사에서 상징하는 그 무엇이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노무현 시대와 디지털 민주주의』는 ‘노무현에 관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주의’의 한 페이지를 실천한 이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그를 깊이 추억하는 것이 현 시점에 ‘민주주의’가 처해 있는 착잡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노무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하의 ‘민주화투쟁’이 결실을 맺은 지 10여 년도 되지 않아 다시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되새겨볼 때, 저자가 말하고 있듯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아직 진부한 말이 아니”다.
그간 한국 현대사를 논한 책은 많지만 매체에 초점을 맞추어, 문화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의미하는 바는 깊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의 주목 속에 ‘디지털 민주주의’로 진화한 한국형 민주주의의 탄생 배경과 과정을 담았다. 1장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박정희의 군부독재기를 거쳐 전두환으로 대변되는 군사정권기를 약술한다. 2000년대, IT강국으로 거듭난 한국에서 정보통신의 선진화가 어떻게 정치에 접목되어 민주화에 일조하게 되는지에 대한 배경도 알 수 있다. 2장부터는 김대중 정권을 거쳐 시작부터 새로운 정치 스타일을 예고했던 노무현 정권하의 정치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와 거기에서 탄생한 ‘네티즌’이라는 새로운 ‘시민’형이 선보인 ‘제2의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정치 패러다임을 읽어낸다.
특히 4장과 5장, 6장 등 이 책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디어와 정치․경제의 상관관계는 정보통신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의 의식 수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권언유착’, ‘정경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되돌아본다. 2002년의 ‘민주당 살생부 파문’부터 ‘황우석 사건’, ‘미네르바 사건’, ‘
2002년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2004년 전무후무한 대통령 탄핵사태를 현해탄 건너에서 지켜보며 일본 정치사회 문화와의 연장선상에서 쓰여져 2005년 발간 당시 현지에서 큰 관심을 받았던 이 책의 원제는 “한국의 디지털 데모크라시”이다. 시민의 정치 참가가 소극적이고 인터넷 문화가 한국처럼 그 파급력이 크지 않은 일본에서 200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상은 낯선 모습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해서 알본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졌던 책을 발간 이후 5년간 벌어진 일들을 추가해 한국어 증보판으로 출간하는 것은 역행과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함이다. 오늘과 내일을 지켜내는 길은 어제를 잊지 않는 방법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_추천의 말
미디어와 민주주의를 둘러싼 실험장으로서의 한국. 이 책이 묘사하는 한국상은 일본의 가까운 미래다. _강상중(도쿄대학 교수, 정치학자)
어떻게 해서 한국 사람들이 거대 신문사와 기성 권력과의 유착을, 인터넷을 통해 극복해나갔는지 명석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_일본의 인터넷신문 『JanJan』
_본문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아직 진부한 말이 아니다. 그것을 진부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한국 국민은 보여주었다. 인터넷의 보급이 더욱더 발전하는 가운데 이미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의 관계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일본 미디어의 책무라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구조화된 기득권에 저항하는 시민참가형이라는 새로운 정치의 틀이 실험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다양한 영역에서 한일 시민사회의 교류와 연대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일본에서도 말뿐인 개혁만으로는 권력을 지탱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 시민사회의 파워가 일본 시민사회에 ‘역수입’됨으로써 일본 정치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될 날도 닥쳐올지 모를 일이다.
시민사회가 뒤받치는 한국의 정치개혁은 일본 시민사회와의 교류와 연대를 통해 어떠한 월경적 공공영역을 구축해나갈 것인가. _26쪽
노무현의 ‘진정성’을 설득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애도 정국의 저류에는 한 정치인이 남기고 떠난 ‘진정성’에 대한 갈구가 있음을 전파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쉽게도 일본은 정치에 있어서 ‘진정성’의 의미를 깨우칠 기회를 끝내 놓치고 말았다.
2002년 노무현을 당선시킨 한국의 대통령선거와 2007년 오바마를 당선시킨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보면서 일본에서는 선거에서의 인터넷의 도구적 효과만을 주목하였다. 다른 무엇보다 소통을 통해 ‘진정성’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공감을 통해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으로 역사 발전의 동력이 될 때, 인터넷은 정치에 있어서 의미를 가지게 되며, 비로소 사람들은 ‘진정성’에 걸맞은 정치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_312쪽
현무암_1969년생. 제주도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홋카이도대 대학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원 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디지털 데모크라시』(슈에이샤, 2005)와 『통일코리아 동아시아의 신질서를 생각한다』(고분샤, 2007) 등이 있으며, 재일동포 정치학자 강상중과의 공저 『대일본 만주제국의 유산』(고단샤, 2010)이 곧 출간 예정에 있다.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문화와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새로운 한일관계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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