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비평가 장성규가 첫 평론집 『사막에서 리얼리즘』을 상재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바라보는 바로 지금 후기자본주의 시대는 ‘사막’이다. 그는 이 ‘사막’을 가로질러 건너가기 위한 문학의 주요 수단으로 주저 없이 ‘리얼리즘’을 꼽는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통해 낡은 반영론적 리얼리즘이 아닌, 후기자본주의의 변화하는 현실지형에 상응하는 새로운 현실탐구의 관점을 야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막 너머를 꿈꾸는 새로운 문학의 문법들
후기자본주의 현실과 대응하며 징후적으로 성과를 보여주는 2000년대 문학의 새로운 문법과 달리, 비평은 기존의 비평적 구도로만 이를 파악하려 해왔다. 이는 특히 진보적 문학을 지향하는 비평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저자는 문학의 새로운 문법과 비평의 진부한 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의 실체를 분석하고, 이로부터 문학과 현실 간의 관계 맺음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원리를 추출하고 있다. ‘마주침의 문법’이란 부제목로 묶인 1부에서는 김사과 ․ 황정은 ․ 정지아 ․ 김연우와 박민규 ․ 권리 ․ 조두진 ․ 김경욱 ․ 윤고은 등의 소설을 통해 주체와 타자 간의 윤리적 관계 맺음과 비가시적인 형식으로 현현하는 리얼리티를, 그리고 백무산 ․ 황규관 ․ 김사이 등의 시를 통해 노동 개념의 급진적 재구성과 시적 리얼리티의 문제 등을 점검하고 있다.
‘진화하는 현실주의’라는 부제목으로 묶인 2부에서는 2000년대 문학의 주요논쟁 사안이었던 트랜스 내셔널 징후에 대한 황호덕 ․ 복도훈 ․ 조정환 ․ 이명원의 글을 살펴보며 이 논쟁 과정에서 다뤄진 방현석 ․ 오수연 ․ 정도상 ․ 권리의 소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트랜스 내셔널 논쟁이 주체와 타자 간의 관계 맺음의 ‘윤리’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최근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감각의 분배학이 아닌 교감의 정치학으로 그 문제 설정부터 다시 잡아야 함을 지적하며 시적 교감을 통해 문학적 정치성을 복원하려는 텍스트들을 살피고 있다. 김영하, 김훈, 김연수의 역사소설을 통해서는 대문자 역사의 틈새를 비집고 하위주체들의 대안 역사를 기획하고 있음을, 남북관계를 다룬 황석영, 이응준의 소설을 통해서는 탈분단의 문제설정에 의해 소수자 정치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탈분단 문학의 지향점을 추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들을 통해 리얼리즘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긴장과 모순의 변증법의 소산임을 밝히고 있다.
일제 말기 ‘사소설’에서부터 최근 장기하로 표상되는 저항문화까지 폭넓게 문학 • 문화적 현상들을 계열화하고 의미화한 3부에서는 ‘연속과 단절, 일탈과 계열’의 관점에서 우리 문학의 좌표를 읽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문학(화)을 배태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텍스트의 위치를 점검하는 비평이 부족함을 지적하며 역사적 인식으로부터 현재의 좌표를 측정하고 있다.
개별 작품집들을 다룬 4부에서는 사막에서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징후적으로 보여준 작품집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들을 ‘징후 너머의 텍스트들’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이들이 추의 미학이나 채플린-소설가, 편집증적 징후, 몽유의 글쓰기 등 나름의 방식으로 비루한 현실과 맞짱을 뜨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분열된 시적 주체를 통해 성과를 이루고 있는 2000년대 현대시를 통해 지금까지의 문학적 관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혁명의 언어가 분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경향신문』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리얼리티를 탐색하는 세 가지 형식」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가톨릭대, 경기대, 광운대, 중앙대 등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쳐왔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산하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함께 쓴 책으로 『식민지 근대의 뜨거운 만화경』, 『박태원 문학 연구의 재인식』등이 있다. 리얼리즘의 급진적 재구성이라는 미학적 ․ 실천적 과제에 관심이 많다. 비루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그 너머 다른 현실을 꿈꾸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그 문학의 힘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 나아가 이로부터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비평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차례
책머리에
1부 마주침의 문법들
●현실과의 마주침, 생성하는 문법들 ●리얼리티를 탐색하는 세 가지 형식 ●환상의 형식으로 현현하는 리얼리티 ●2000년대 노동시의 새로운 가능성‘들’
2부 진화하는 현실주의
●트랜스 내셔널의 징후와 ‘과정’으로서의 윤리 ●감각의 분배학에서 교감의 정치학으로__ 최근 ‘시와 정치’ 담론에 대한 비판적 테제●재현 너머 흔적을 복원하는 소설의 욕망__ 2000년대 역사소설에 대한 성찰과 전망 ●통일문학을 넘어 탈분단 문학으로
3부 연속과 단절, 일탈과 계열
●우리 시대의 문학전집, 혹은 ‘정전의 재구성’ __ 문지와 창비의 한국문학전집 발간에 대하여 ●‘민족-국가’의 ‘이행’과 새로운 저항주체 형성의 가능성__ 혹은 채광석과의 우애로운 ‘마주침’을 위하여
●시대와의 ‘불화’, 세계와의 ‘긴장’ __ 일제 말기 한국 ‘사소설’의 문학사적 의미
●메아리, 이적, 그리고 장기하__ 2000년대 민중가요-저항문화의 계보학을 위하여
4부 징후 너머의 텍스트들
●비루한 현실과 맞짱 뜨는 소설들__ 김사과의 『풀이 눕는다』와 윤고은의 『일인용 식탁』 ●추(醜)의 미학들__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과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채플린-소설가, 혹은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__ 염승숙의 『채플린, 채플린』 ●편집증이 지배하는 빛의 제국__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 ●몽유(夢遊)의 글쓰기__ 김이은의 『코끼리가 떴다』●시의 정치성과 분열의 징후들__ 황성희의 『앨리스네 집』과 서효인의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클리나멘, 유물론, 그리고 시적 혁명의 징후들__ 나희덕의 『야생사과』, 류인서의 『여우』, 장석원의 『태양의 연대기』, 오은의 『호텔 타셀의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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