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산문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 (2005)

실천문학 2013. 8. 2. 14:35

 

 

 

         

 

 

 

 


문단에서 소문난 모주꾼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한창훈, 네 작가가 대양으로 나섰다. 컨테이너선 현대하이웨이호를 타고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3만 리를 이동한 이 항해는 한국 문단에서 유례가 없는 일. 이 책은 대만의 지룽, 홍콩, 중국의 얀티안, 싱가포르, 해적이 출몰하는 말라카 해협과 말레이시아의 포트클랑, 그리고 깊고 푸른 인도양을 건너 두바이까지, 독자의 상상력을 활짝 틔워주는 스무하루간의 승선 기록이다.


자, 바다다. 그것도 대양이다. 우리는 현대상선 측의 전폭적인 협조에 힘입어 컨테이너선 하이웨이호를 타고 두바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대만의 지룽, 홍콩, 중국의 얀티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포트클랑, 그리고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항해 3만 리, 총 스무하루가 걸렸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책머리에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바닷길 3만 리―대양으로 나선 작가들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한창훈. 문단에서 흔히 두주불사의 '죽음의 사인방'이라 불리는 이들이 한 배를 탔다. 올해 4월, 정말로 한 배를 타고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항해했다. 현대상선의 2200TEU급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에서 저 머나먼 아라비아반도의 두바이까지, 꼬박 스무하루간의 대장정이다.

이들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육지에, 그것도 1990년대 이후로는 카페와 여관에만 갇혀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비좁은 땅에서 졸렬해진 상상력을 해방하려 바다로 나설 기회를 구하던 이들은 끝내 대양을 가르고 왔으니, 어쩌면 이번 여행은 한국문단에서 유례없는 상상력 회복 이벤트라 할 만하다.

이들의 항해와 기록이 "해양 시대를 대비한 해양문학의 새로운 첫걸음"이 되고, "앞으로도 교역의 현장과 대양을 통한 소통의 언어를 이루기 위해 현역 작가들은 절실하게 닻을 캐고 팽팽하게 돛 올리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은 대양으로 나선 것이다.


개성 넘치는 네 작가의 별난 여행기

이들의 면면을 보자. 오십이 다 된 나이이지만 아직 총각인 시인 박남준은 모악산 골짜기에서 십수 년간 홀로 산중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칩거하고 있는 다소 특이한 인물이다. 네 명 중 맏형 격이지만 덩치로 보자면 다른 우람한 세 작가에 비해 작고 가벼워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다. 이 여행을 "어린 날의 소풍처럼" 손꼽아 기다렸다는 그는 이번 여행을 담백한 산문과 몇 편의 시로 풀어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유용주는 단상(斷想)과 단문(短文)으로 짜여진 산문의 묘미를 보여준다. 「물방울들」이란 이 꼭지는 얼마 전 출간된 『쏘주 한 잔 합시다』에도 '아름다운 것은 독한 벱이여'란 제목으로 실린 바 있다. 중복 수록의 문제가 있지만, 네 작가가 함께했다는 점에도 큰 의미를 둔 이번 여행의 취지를 감안, 분량을 조절하여 싣게 되었다.

안동에서 일평생을 보낸 '산골 촌놈' 안상학 시인은 여덟 편의 시와 편지글 같은 여덟 편의 산문으로 바다 비단길 3만 리 이야기를 펼쳤다. 특히 여행의 끝자락, 두바이 도착 후 다녀온 사막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여행을 주도한 한창훈은 역시 섬사람들과 바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표한 이답게 선박과 항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외모만큼이나 투박하고 걸쭉한 입담으로 스무하루간의 여행일지를 작성해놓았다. 입출항에 따른 선원들의 급박한 작업도 현장감 있게 묘사했다.


바다와 하늘과 사막, 여행이 이들에게 남긴 것

그러면 이들의 여행은 어떠했던가. 부푼 기대를 안고 배에 오른 이들은 승선 첫날, 부산항에 정박한 배 안에서 술이 없어 괴로움의 밤을 보낸다. 처음엔 서먹했던 선원들과도 선상 탁구를 치며 스스럼없는 관계를 형성한다. 싱가포르를 지나 해적이 출몰한다는 말라카 해협을 지날 때에는 소방호스 외엔 아무런 방어용 무기가 없는 배의 해적 당직을 자처하여 경계근무를 선다. 마침내 인도양에 들어선 이들은 그 깊고 푸른 바다를 보며 바다가 자신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깨닫는데, 밤하늘의 별과 아침 해 저녁노을을 보며 존재론적인 고민에 휩싸이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는다.

바다는 넓은 데로 나아갈수록 너울이 장대해진다. 깊어지기 때문이다. 험하고 깊은 곳을 어렵게 헤쳐나간 뒤에야 잔잔한 바다가 나오고 항구에 다다른다. 문학도 삶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넓고 깊고 험하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잔잔해진다. 들숨 날숨이 길어진다. (유용주)

항해 과정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인상적인가를 내가 물었는데 캡틴은 선수부가 막 부두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가장 가슴 뭉클하다고 답해 나를 감동시켰다. 아, 그는 항해자이다. 이동을 삶의 질료로 삼는, 멀고 먼 곳을 향해 파도치는 대양 위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고독한 항해자인 것이다. (한창훈)


선원들과 함께 보낸 나날, 땀 냄새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가족들 친구들과 떨어져 외롭고 고된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잡아맨다. 하이웨이호의 선원은 모두 22명. 모두 남자다. 네 작가는 이 중 미얀마에서 온 선원 일곱을 제외한 15명의 선원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했다. 선장에서부터 20년 젊음을 배에서 보낸 갑판수까지, 승선경력 21년의 백전노장 조기장으로부터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스물두 살 실습생까지, 바다 사나이들의 눈물과 웃음, 회한과 부푼 꿈이 어린 진솔한 이야기들에는 사람살이의 냄새가 가득하다.

늘 붙어 다니는 네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실행한 이 유쾌한 여행은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세 사내는 큰 덩치에 목자 불량하게 생겼는데, 그 값을 하느라고 입담 걸기가 걸쭉한 탁배기 맛이고, 그 탁배기들 사이에 청주같이 맑은 표정의 한 사내는 약골로 보이긴 하나 역시 술이 세고 입담도 좋다. 그리하여 이 네 사내가 각기 특유의 입담을 통해서 들려주는 대양 체험의 이야기는 뭍에만 묶여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여름날 터진 북창문처럼 탁 트이게 해준다."(소설가 현기영)

 

박남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1984년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등을 펴냈다.

유용주
196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다. 1991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가장 가벼운 짐』, 『크나큰 침묵』,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쏘주 한 잔 합시다』, 성장소설 『마린을 찾아서』 등을 펴냈다. 1997년 제15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안상학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등을 펴냈다.

한창훈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등을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바닷길 3만 리에 흐르는 뱃사람들의 애환·감상 ―― 이순녀 기자, 서울신문(2005. 12. 23.)
 바다에 취하다 ―― 박해현 기자, 조선일보(2005. 12. 23.)
 “침체된 한국 해양문학 되살렸으면…”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5. 12. 23.)
 시·산문으로 버무린 ‘바닷길 삼만리’…문단 4인방 공동출간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5. 12. 26.)
 바닷길 3만 리 별난 여행기 ―― 강춘진 기자, 국제신문(2006.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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