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슬로우 불릿 (2001)

실천문학 2013. 8. 5. 14:44

 

 

 

 

 

     

 

 

 

 

 


서서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파멸을 가져오고야 말기에 '느린 총알'로 불리는 고엽제.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건과 그 도구들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비극적인 삶의 고통을 꿰뚫어 드러낸 이대환 장편소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세계의 모든 지성은 20세기에 인류의 양심을 실험한 두 개의 전쟁으로 스페인내전과 베트남전쟁을 꼽는다. 특히 베트남전쟁의 세계사적인 복잡성과 비극적인 실체를 볼 때, 미국의 최우방으로서 파월국군을 보낸 우리로서는 이로 발생된 다양한 문제들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 또한 세계사의 주변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도도한 문명의 급류에서 중심을 찾기 위한 작은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대환은 이 작품에서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건과 그 도구들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비극적인 삶의 고통을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서서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파멸을 가져오고야 말기에 '느린 총알'로 불리는, 고엽제를 앓고 있는 사람은 현재 우리 나라에 7만여 명이다. 이 소설은 그 중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한 참전용사와 후유증 유전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쓰라린 삶을 다룬 작품이다.

시대 정신과 현실적 고통에 천착한 장편소설
한국은 1965년도부터 1973년 철군시까지 베트남전쟁에 32만 명을 파병하였다. 이 숫자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것이었으며, 이 전쟁에서 한국군은 4,960명이 사망, 10,962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그 전쟁의 쓰라린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채 있다. 특히, 아무런 사전 주의사항 없이 미군에 의해 주도적으로 사용된 고엽제 피아의 구별 없이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겨주었고, 대를 이어 그 고통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으며, 현재도 예민하고 중요한 사회적 현안으로 존재한다.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베트남전쟁참전전우회' 등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2년 전부터는 백병엽 변호사와 함께 미국 고엽제 제조사들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전개하고 있는 참전용사들의 아비규환이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2001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0년대 말 우리 나라 DMZ에서 복무했던 제대군인이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에 의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심사 결과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DMZ에서 복무했던 제대군인 중 554명이 고엽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심사 결과 이 중 14명이 후유증을, 65명이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고엽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떠나 일반 제대군인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더구나 30여 년 전의 전쟁, 그날의 총알이 지금도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적 차원의 또는 정권적 차원의 이해관계가 우리를 무더운 월남으로 내몰았다. 그 정글의 복판에서 살육전이 있었다. 이후에 계속된 길고 오랜 통증……. 이대환은 그 전쟁과 전쟁의 이면 그리고 전쟁 이후에도 적과 아군의 구분을 넘어, 결국 본질적인 인간의 문제가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모든 논의와 논쟁, 그리고 문제의 핵심과 방안은 송두리째 소설 바깥의 문제, 즉 인간 밖의 문제로 남겨둔다. 이로써 더욱 극명하게 피폐된 인간의 모습과 삶의 의미를 사실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베트남전에 따른 문제의 전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슬로우 불릿』이 지니는 가장 큰 강점이며 문학적 가치이다.

고엽제가 눈처럼 살포된 그 시간에
저항의 지하마을에선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을까…….
이 작품에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에게 화학병 교육을 받고 고엽제와 씨에스파우더를 다루었던 김익수와 그의 아내 숙희, 그리고 두 아들이 나온다. 20여 년째 화학무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익수는 10년 전부터는 뻐꾸기가 우는 계절이 오면 피를 토하며 빈사상태가 되는 고통을 연중 행사처럼 치르고 있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숙희는 남편을 '밥벌레'라고 한 자신의 말에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녀는 텔레비전 기자가 들이댄 마이크 앞에서 "목숨만 붙어 있다 뿐이지 해골 아닌교! 산송장이시더, 산송장! 밥벌레시더, 밥벌레! 죽음도 무섭다고 비케가는 밥벌레, 우리는 너무 억울하니더"라고 울분을 토로했던 것이다. 숙희는 물론 자기 남편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간절히 전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한번도 남편을 원망해 본 적이 없는 자신도 그만큼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부정을 저지른 아내처럼 가책을 느낀다. 후유증의 유전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있는 큰아들 영호는 아버지를 심리적으로 교묘하게 자극하며 아버지가 앰뷸런스에 실려가고 없는 밤 손목의 동맥을 끊게 되고, 사타구니에 습진과 같은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작은아들 영섭은 그의 가족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고 나서 여자친구에게 절교를 당한다. 자기 때문에 하반신 불수가 된 아들의 항문에 호스를 꽂고 관장을 해주는 아버지의 참담한 자괴감을 냉정한 시선으로 드러내기도 하며 기도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큰아들의 미묘한 웃음과 달관한 듯한 말투를 통해 죽음을 예비하는 청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남의 나라의 전쟁에 동원되었던 한 인간과 그 가족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과장없이 무서울 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에게 한 가닥의 양심적 가책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물들의 마음속에 서린 그늘과 가족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까지 그려낸 작가의 통찰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뻐꾸기 울음소리와 호랑이 꼬리를 닮은 포항 호미곶의 생동하는 자연과의 대비 속에 죽음을 치러낼 수밖에 없는 사람의 고통을 음각하기도 하는, 우리 시대의 흔한 문학적 발상과 달리 이대환의 가볍지 않은 시대정신이 바닥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환
1958년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한국 펜클럽 주관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당선하였고, 1989년 『현대문학』 지령 4백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하였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말뚝이의 그림자』, 『새벽, 동틀녘』, 『겨울의 집』, 창작집 『조그만 깃발하나』, 『생선창자 속으로 들어간 시』 등이 있다.

『슬로우 불릿(Slow Bullets)』 느린 총알이라는 뜻의 이 소설은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때 마침 오는 30일은 베트남 종전 26주년이 되는 날.
1965년부터 1973년까지 32만명의 군인을 보낸 우리 나라는 이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4,960명이 사망하고, 고엽제 피해자를 비롯한 1만962명의 부상자를 낸 베트남 전쟁의 상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슬로우 불릿』은 베트남 전쟁에서 화학병으로 근무했던 김익수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장에서 돌아온 김익수는 결혼을 하고 심신이 건강한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간다.
그러나 익수에게는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가 찾아들어 '산송장' 신세가 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멀쩡하던 큰아들 영호마저 23세의 나이에 갑자기 하체가 마비된다. 이처럼 베트남 전쟁에서 맞은 고엽제라는 탄환은 '슬로우 불릿'이라는 이름처럼 뒤늦게 찾아들어 질기게 두 사람을 괴롭힌다.
"무슨 잘못으로?" 아버지 익수와 젊은 아들 영호의 자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20세기 후반 최대의 야만' 베트남 전쟁의 비극성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___서울경제신문 (2001년 4월 25일 수요일)


아직 끝나지 않은 베트남전

미국에서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를 '느린 총알(slow bullet)'이라 부른다. 서서히, 그러나 마침내 심장에 박히는 총알. 베트남전은 오는 30일로 종전 26주년을 맞지만 베트남전의 악몽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데다 현재 국내 고엽제 환자만도 7만여 명에 이른다.

이대환(43) 씨의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실천문학사)은 한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그 가족들을 다룬 이야기다. 작가가 살고 있는 경북 포항 호미곶이란 마을에 살고 있는 실제 고엽제 환자 김길웅 씨 가족을 모델로 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에게 화학병 교육을 받고 고엽제와 시에스파우더 등을 다루었던 김익수.
20년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는 10년 전부터는 뻐꾸기가 우는 계절이면 피를 토하며 빈사상태가 된다. 그를 취재하러 온 방송기자에게 "목숨만 붙어있다뿐이지 해골 아닌교! 산송장이시더, 산송장! 밥벌레시더, 죽음도 무섭다고 비케가는 밥벌레"라고 울분을 토로하는 부인.
후유증의 유전으로 어느날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된 큰아들 영호. 그는 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가고 없는 틈에 동맥을 끊는다. 사타구니에 습진 같은 증세가 나타난 작은아들 영섭은 여자친구에게 절교당한다.

이 작품은 남의 나라 전쟁에 이유도 모르고 동원됐던 한 인간과 그 가족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단순한 기록을 뛰어넘어 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또 자기 때문에 하반신 불수가 된 아들의 항문에 호스를 꽂고 관장해주는 아버지의 참담한 심정, 달관한 말투로 죽음을 예비하는 큰아들 등 고통받는 개인과 가족간 심리도 섬세하게 묘사했다.

현장 취재를 위해 베트남을 세 차례 방문했다는 작가는 "문학이 가벼운 말장난이나 오락에 치우치고 있는 요즘, 사회성이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고 고엽제 환자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이 책을 환자를 비롯, 스스로 죽음을 극복해 인간의 야수적 교만을 푸르게 비웃어 주는 베트남 땅 위대한 초목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또 이 소설을 읽은 '공동경비구역 JSA' 의 박찬욱 감독은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나는 이 서럽고 아린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세대가 우리임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며 영화제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나리오는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 모임'의 방현석, 김형수 씨가 이미 써놓았다.
___국민일보 한승주 기자 (2001년 4월 24일 화요일)


"역사란 멀쩡한 사람 잡아먹은 다음에야 바른길로 가게 되는 괴물"

벌써 월남전이 끝날 수는 없다. 고엽제와 더불어 그 전쟁은 아직도 거친 숨을 헐떡인다. 그 고통을 보듬고 세상을 버리는 이 땅의 희생자들을, 소설가 이대환(43)이 자신의 작품 안에 옮겨 놓는다. 우리는 "인간의 야수적 교만"을 비웃으며, 영혼의 신비를 끊임없이 속삭여주는 "베트남 지대의 위대한 초목"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슴들을 위해 이대환의 장편 『슬로우 불릿』(실천문학사)은 화염방사기를 벗어 던지고 베트남의 정글을 헤치고 들어간다.

경북 포항의 호미곶, 주인공 김익수는 50년 후반 가장으로 고엽제 환자다. 아내 권숙희는 오전에는 해녀로, 오후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한다. 후유증 대물림으로 척수신경이 마비된 큰아들 영호는 기도원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둘째 아들 영호는 공고 2학년이다. 그러던 어느날 지역방송국 취재진이 그를 찾아온다.
그는 뻐꾸기 울음소리 수를 헤아리며 큰아들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자신의 육체 중에 정상의 기능을 지탱하는 부위를 하나씩 확인해 본다.
이제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개혁개방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호치민시다. 전화를 걸어온 옛 상관 박문현 대위는 김익수 병장에게 말한다. "우리가 뭣 때문에 가루약을 퍼부어대며 죽자고 악을 쓰며 싸웠는지 모르겠어. 역사라는 거, 멀쩡한 사람들을 실컷 잡아먹은 다음에야 어느 한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바른길로 가게 되는 괴물인가 봐." (37쪽)

그러다 시간은 훌쩍 1960년대 후반 어느 날로 되돌아간다. 월남전은 바야흐로 가장 극렬한 상태로 치닫고 있는 중이고, 택시 운전사 출신의 김익수는 국내에서 제대특병을 한 달 남겨놓고 월남행을 자원해 버린다. 손재주 좋은 그는 일급 화학병이 되는데, 죽음의 가루 시에스파우더와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소설은 한 세대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그때와 지금을 처절하게 오간다.

육신은 파괴되었고, "요강!"이라고 이치는 소리는 그에게 마지막 유언이 될 수도 있다. 뻐꾸기가 우는 절기면 그는 어김없이 울컥울컥 핏덩이를 게워내는 행사를 반복해오고 있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악한 전쟁 유령의 스토킹이었다. 제도가 속이고, 국가가 속이고, '세계질서'가 이를 은폐했다. 미국에서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를 '느린 총알'이라고 부른다. 저주는 천천히 날아와 몸속을 뚫고 들어와 박혔다.

"문학의 원초적 반체제성"을 끈기 있게 붙들고 있는 이대환은 풀꽃에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이는 본격 리얼리즘의 적자다. 그의 다섯 번째 장편인 이번 소설은 현재 우리나라에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7만 여명을 대신해서 하나의 문학적 증언이 되고 있다.
___조선일보 책마을 김광일 기자 (2001년 4월 21일 토요일)


느릿느릿 모진 저주 '고엽제'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의 대물림되는 고통을 소재로 한 소설 『슬로우 불릿』(실천문학사)이 출간되었다. 포항에서 활동하는 이대환(43) 씨가 지난 97년에 중편으로 발표했던 작품을 장편으로 개작했다.
『슬로우 불릿(slow bullet)』이란 '느린 총알'이라는 원어의 뜻처럼 느리게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고엽제와 그 피해자를 가리키는 미국식 표현이다. 『슬로우 불릿』의 '슬로우 불릿'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고엽제와 화학무기를 다루었던 김익수 전 병장이다.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모에 듬뿍 퍼담은 가루 고엽제를 가슴에 안고 비료처럼 뿌려대는 시범을 보이고는 짝짝짝 박수를 받기도 했"을 정도로 고엽제의 영향에 무지했던 그는 전쟁 당시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 후유증을 뼈저리게 앓고 있다. 그 자신이 간질과도 흡사한 발작을 일으키거나 한뭉텅이씩 피를 토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두 아들에게까지 병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노동운동가를 꿈꾸었던 큰아들은 하반신 마비로 기도원에 들어갔고, 아직 고등학생인 작은아들 역시 고엽제 때문으로 추정되는 허벅지의 습진 때문에 괴로워한 나머지 가출을 했다.

소설은 기도원에 들어가 있던 큰아들이 일시적으로 귀가한 며칠을 배경으로, 고엽제 망령이 어떻게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고발한다. 작가는 베트남전쟁의 부도덕성과 고엽제의 위험성을 냉정하게 기술함은 물론, 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심리의 추이 역시 꼼꼼하게 추적함으로써 작품이 단순한 사회고발소설로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고엽제 후유증을 두고 "세계의 온갖 추악한 정치적 음모가 얽혀 있는 병"이라 규정하는 것이 작가의 정치 사회적 관점을 대변한다면, 네 가족이 서로를 향해 얽히고 설킨 애증의 관계에서 허덕이는 모습은 심리 묘사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가출한 작은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나머지 세 식구가, 모처럼 준비한 전복죽에는 숟가락 한번 대보지 않은 채 나란히 잠자리에 누운 마지막 날 밤의 장면은 인상적이다. 다음날 새벽 주인공 익수는 다시 한 번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가서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그 사이에 큰아들 역시 미리 계획했던 대로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날 저녁 서로 사랑하는 가족끼리의 갈등과 다툼은 분명 표적을 잘못 찾은 것이었거니와, 자살한 큰아들이 유서처럼 남긴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다 할 수 있다: "나의 아랫도리에 뭉쳐져 있는 폭력을 향한 분노를 나는 더 참을 수 없어 남김없이 이 세계로 되돌려준다."
___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2001년 4월 23일 월요일)


고엽제 후유증 겪는 일가족 증언. 체험수집 치밀하게 묘사

베트콩이 우거진 나무들 속에 숨지 못하도록 수풀에 뿌려졌던 미국산 고엽제는 밀림을 까맣게 말리려는 거대한 음모였다. 무지했던 병사들은 그러나 가루 고엽제를 철모에 퍼담아 뭉텅뭉텅 풀숲에 뿌려대며 제초작업의 수고를 덜어주는 미국에 감사했다. 30일로 베트남전이 끝난지 26주년이 된다. 지금껏 베트남전의 상처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이대환(43)의 새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실천문학사 발행)에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베트남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로우 불릿(Slow Bullet, 느린 총알)'은 '천천히 그러나 마침내 심장을 관통하는 살인'이라는 의미로 고엽제 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경북 포항의 호미곶에 살고 있는 김익수는 뻐꾸기 우는 계절이 오면 피를 토하며 병원에 실려가는 고통을 10년째 치러온 고엽제 환자다. 통조림공장에 다니는 아내가 가장노릇을 감당해야 하고 큰아들 영호는 하반신 마비, 둘째 아들 영섭은 사타구니 습진이라는 고엽제 후유증을 물려받았다.

고엽제 문제를 취재하러 온 지역방송국 TV카메라 앞에서 아내는 "죽음도 무섭다고 비케가는 밥벌레! 우리는 너무 억울하니더!"라고 부르짖는다.

기도원에서 돌아온 큰아들은 가슴 깊은 곳에 분노를 쌓아놓은 채 아버지를 향해 이죽거리기만 하고, 습진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절연당한 둘째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파국을 더욱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추억이다. 남편을 "밥벌레"라며 울먹이는 아내는 청보리밭 무덤가의 첫날밤과 '고소하고 반지르르하게 살았던' 결혼 초 몇 년을 기억하고, 항문에 호스를 꽂고 관장을 하는 큰아들은 민중운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노동자 시절을 기억한다.
아무리 먹어도 바싹바싹 마르기만 하고 해마다 시뻘건 핏덩이를 토해내며 까무러치는 고엽제 환자의 고통에 맞닥뜨리면 가슴이 서늘해지지만, 그보다도 섬뜩한 것은 고엽제의 '단계별 진화'를 체험했던 참전용사에 대한 치밀한 묘사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 때문에 속옷차림으로 고엽제를 옮겨 담았던 주인공은 "등줄기를 타고 인두처럼 오르내리는 통증"과 "목구멍을 면도날처럼 찢는 고통"에 시달렸다. 양민에게 화염방사기를 당겨 몸에 불이 붙은 베트남 소년들이 고꾸라지는 장면도 어른거린다.
고엽제 후유증 환자가 겪는 현재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전쟁의 기억이 더 쓰라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환 씨는 고엽제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한 김길웅 씨의 증언을 듣고 베트남을 답사, 당시의 전투상황과 고엽제 살포작업, 양민 학살행위 등 전쟁 체험을 수집해 아픈 현실로 재현해냈다.
___한국일보 김지영 기자 (2001년 4월 24일 화요일)


고엽제 문제다룬 장편소설

소설가 이대환 씨가 오는 30일 베트남전 종전 26주년을 맞아 내놓은 고엽제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월남전 참전용사와 후손들이 '느린 총알(슬로우 불릿)'로 불리는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그렸다. 작가는 참전용사 김익수와 그의 아내 숙희, 두 아들의 절망을 통해 베트남전은 끝났지만 고엽제와의 전쟁은 진행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작가는 또 전쟁에 의한 인간성 상실과 갈등, 그리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드러내 베트남전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___한국경제신문 (2001년 4월 24일 화요일)

代 물리는 고엽제 후유증 증언 뛰어넘는 '작품의 힘'

이틀 전, 밤에 드디어 비가 내렸다. 한밤을 다 새우며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실천문학사)을 읽고 비를 맞아들이는 새벽을 보았다. 많지도 않은 비를, 그러나 목마른 세상은 그 한방울도 잃지 않겠다는 듯 온힘을 다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엄숙함조차 깃들어 있었다…….

소설은 본질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 서양의 문학이론가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구의 소설을 망라하는 몇 가지 특징을 파악하고자 했었다. 그에 따르면 소설은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는 또한 세상에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 좋은 소설도 있다고 했으니,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은 바로 그런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슬로우 불릿(slow bullet)이란 미국의 고엽제 후유증 환자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베트남에 참전했던 우리의 선배들 가운데도 그런 이들이 있으니, '슬로우 불릿'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전혀 낭만적인 위안을 위한 문학은 아닌 셈이다. 시·소설 할 것 없이 연문학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 시대에, 전쟁에 나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어 돌아온 사람의 고통을 그린 이야기라니. 이대환이라는 작가는 시류를 모르거나 아니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미'의 소유자가 아닐까?

우리에게는 베트남이 필요하다고, 나는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미 베트남은 우리 곁에 존재했었다.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익을 명분으로 우리는 젊은이들을 '타인'의 전쟁터로 실어 날랐고 그곳에는 죽음과 학살과 부패와 라이따이한과……, '죽음에 이르는 병'의 씨앗이 있었다. 그가 바로 김익수라는 인물이다. 또한 그의 두 아들에게도 그 '죽음에 이르는 병'은 유전되니, 그들이 바로 영호와 영섭이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이므로 우리는 베트남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리라.

그러나 『슬로우 불릿』을 읽는 이들은 비평가 황광수 선생이 말했듯 이 작품이 증언을 뛰어넘는 힘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___조선일보 책마을 방민호 (문학평론가) (2001년 6월 1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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