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그 매듭은 누가 풀까 (2003)

실천문학 2013. 8. 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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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중심을 꿰뚫어보는 눈, 여성문제의 본질을 파헤친 본격문학의 진수! 여성의 운명에 대한 끈질긴 천착과 여성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의 폭넓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이경자가 4년간 밤낮 없는 신열에 시달리며 완성한 작품. 혼절을 거듭하며 운명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격렬하게 발버둥친 한 여성의 고뇌 어린 흔적들을 몸서리쳐질 만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그동안 여성의 운명에 대한 끈질긴 천착과 여성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의 폭넓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이경자가 4년간 밤낮 없는 신열에 시달리며 완성한 작품이다.

아내로서, 딸로서, 어머니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무용가 손하영은 자신의 삶을 왜곡시키는 심리적 기제와 장구한 세월 속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적 틀로 굳어버린 제도적 모순을 신병(神病)처럼 앓는다. 그녀의 이러한 고통은, 작은 돌은 땅에 묻고 큰 돌은 뽑아서 던지며 손가락이 문드러지도록 길을 닦으며 저세상의 남편을 찾아가는 청천각시의 고행과 겹쳐진다. 손하영은 서사무가(敍事巫歌) 〈청천각시〉를 연출하면서 여성의 어두운 운명에 대한 명징한 상징성을 발견하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보편적 여성성으로서의 모성성을 회복하는 길 위에 서게 된다.

『그 매듭은 누가 풀까』는 숨막힐 듯한 긴장과 처절한 혼돈과 좌절을 거치면서 진정한 여성의 원형에 한발 한발 다가가는 과정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남성과 여성', '어머니와 딸' 사이의 장벽
“엄마가 부탁인데, 너희들은 엄마를 미워하지 마. 그건 엄마한테보다 너희들에게 아주 나쁘니까. 너희들도 엄마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누가 엄마 될까 봐?”
“엄마가 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이미 네 안에 엄마가 들어 있단다. 아주 많은 엄마가 들어 있단다.”_(321쪽)

저 남자는 누군가. 하영은 울부짖듯 물었다. 저 남자는 누구고, 나는 또 누군가. 당신 누구야! 하영은 잠든 척하는 남편을 흔들며 묻고 싶었다. 당신은 누군가. 당신에게 나는 누구고, 내게 당신은 누군가._(53쪽)

이 소설의 주인공 손하영은 유명한 무용가에다 대학교수를 겸한 지식인이지만, 가장 일상적이고 원초적인 인간관계조차 제대로 풀 수 없어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인용한 대화에서 보이듯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손하영과,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손하영은 한 집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에게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허물 수 없는 차가운 벽을 느낀다. 그녀는 삶의 결핍감을 직업적인 일(무용)과 다른 남자와의 사랑(그녀의 몸만을 탐하는)으로 채워보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뼈아픈 좌절과 결핍감을 증폭시키고 삶을 더 공허하게 만들어버린다.
손하영은 〈청천각시〉라는 무가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구과 사색을 거듭하는 한편, 왜곡된 채 흘러오던 일상적 관계의 장벽들, 즉 뒤엉킨 채 굳어 있는 매듭들의 근원과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청천각시〉를 분석하면서 손하영은, 혼인 첫날밤에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신랑 도랑선비를 만나러 가는 청천각시의 피어린 역정과 고행 속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의 삶에 각인된 운명적인 억압의 틀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무용을 통해 그 어두운 운명의 깊이를
드러내는 한편,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내는 데 온몸을 던진다. 손하영은 혼절과 회생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진정한 여성성으로서의 모성성을 회복해간다. 그녀의 예술혼은 운명적인 것이기에 비장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마침내 대자연의 빛 속에서 거듭나는 그녀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때로는 탕녀 같은 행동을 보이기도 했던 그녀의 깊은 내면에는 지장보살 같은 헌신성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상(我相)을 벗어던지고 극중의 인물로 완전히 전이(轉移)되어야만(193쪽) 진정한 감동을 빚어낼 수 있다는 평소 신념대로 청천각시의 본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손하영은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던 모습들과 하나씩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남편' 혹은 '가정'이라는 사회적 울타리에서 밀려날까 봐 스스로의 욕구와 본원적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과, 가족의 '권력' 안에서 강자였던
아버지 편에 서서 같은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처지와 입장을 외면했던 외로운 어린아이로서의 성장 과정,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어머니의 처지에 놓이게 된 자신의 모습에 눈뜬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손하영은 그녀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청천각시'로 대변되는 여성의 보편적 운명의 뿌리에까지 가닿게 된다.

그랬다. 아주 아득한 것. 빛 같은 것. 자궁 속 열기 같은 것. 고물고물 움직이는 생명 같은 것. 하영은 이 느낌에 마음 붙이고 고개 숙였다. 이 느낌에 몸을 조아렸다. 이 느낌에 자신을 내밀었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래, 도랑선비가 진 짐, 그가 부리지 못한 짐을 청천각시가 질 것이다, 하영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 여자의 텅 빈 자궁 속에 그 여자의 황량한 영혼 속에 청천각시가 움트기 시작했다. 하영은 서서히 자기를 버리기 시작할 것이었다. 현실에서 과거로 혹은 미래로 떠나게 될 것이었다._(155쪽)

몸과 마음을 으스러뜨리는 신열에 시달린 끝에 손하영이 다다른 곳에는 태초의 어머니, 즉 우주 또는 자연 자체의 모태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각해본 적이 없는 '여성'이 있었다. 손하영은 그러한 여성 그대로의 모습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청천각시의 원형에 이르는 길과 자신의 삶의 매듭을 풀어나갈 힘을 얻게 된다.
한 개인의 삶과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는 우리네 수많은 어머니들, 그 어머니의 어머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존재(155쪽)를 깨닫게 되는 경험은 일상 속에서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가 이경자는, 주인공 손하영이 '청천각시'에 전이되기 위해 그러했듯이, 소설 속 주인공 손하영이 되어 그녀의 좌절과 방황, 그리고 깨달음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몸 전체로 받아들이면서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회고한다. 이 소설의 진한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생의 중심을 꿰뚫어보는 눈, 여성문제의 본질을 파헤친 본격문학의 진수
오십대의 중반에 이른 작가 이경자는 이문열과의 페미니즘 논쟁으로 '문단의 10대 뉴스'로 꼽힌 화제작 『사랑과 상처』를 비롯하여, 그동안 우리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여성문제를 드러내고 발언하는 문학의 대표 진영에 서 있었다. 이경자의 문학은 때로는 남성중심적 제도에 대한 공격성으로 인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에서 더욱 넓고 깊은 또 하나의 세계에 닻을 내리고 있다. 여성의 심리와 원형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눈은 살아 있으되,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남성과 세상과 우주의 풍경은 매우 폭넓고 심오하다. 이 소설은 우리의 일상에 숨어 있는 고질적 상처와 아픔을 해석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혼절을 거듭하며 운명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격렬하게 발버둥친 한 여성의 고뇌 어린 흔적들을 몸서리쳐질 만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그 매듭은 누가 풀까』를 세상에 내보내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을 용서하고 마침내 자신과 화해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 희미한 진실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무서움과 두려움의 늪을 건너는 동안 작가도 손하영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다. 무한대의 우주를 한 주발 밥그릇 안에 구겨넣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누군들 손하영이 아니 될 수 있을까 싶다. 거의 4년 동안 몇 차례나 새로 만들어진 손하영. 마침내 그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섰다.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_작가의 말

 

이경자
이경자는 1948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으며,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확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소설집 『꼽추네 사랑』, 『할미소에서 생긴 일』, 『절반의 실패』, 장편소설 『배반의 성』, 『머나먼 사랑』, 『혼자 눈뜨는 아침』, 『황홀한 반란』, 『사랑과 상처』, 『정은 늙지도 않아』, 산문집 『반쪽 어깨에 내리는 비』,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동화집 『궁금한 게 참 많은 세상』 등이 있으며, 1999년 『사랑과 상처』로 제4회 한무숙문학상을 받았다.

 

 "옭매인 여성의 운명... 매듭은 스스로 풀어야" ―― 최홍렬 기자, 조선일보(2003. 12. 06.)
 도랑선비와 청천각시의 설화에 숨은 의미는? ―― 유혜준 기자, 오마이뉴스(2003. 12. 12.)
 여성들이여 ‘삶의 매듭’을 풀어라…‘그 매듭은 누가 풀까’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3. 12. 07.)
 잘 나가는 여자의 새까만 속 ―― 황인원 기자, 미디어 칸(2003. 12. 06.)

뼈 삭이며 4년만에 탈고 女 내면의 남성성 천착

--[그 매듭은 누가 풀까] 출간 이경자씨


지난 1988년 펴낸 소설집 ‘절반의 실패’로 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이래 줄기차게 페미니즘 소설의 여러 갈래에 천착해온 소설가 이경자(55)씨가 장편소설 ‘그 매듭은 누가 풀까’(실천문학)를 출간했다.

무능력한데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순종 일변도의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한 무용가의 내면에 깔린 ‘남성성’에 대해 파고드는 이 소설은 ‘이경자 소설’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즉, 초기 소설에서 남성위주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여성에 대한 고발에 치중하고, 연작소설 ‘정은 늙지도 않아’를 통해 보다 다양한 삶의 내용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 매듭은…’에서는 여성에게 내면화한 남성성의 문제를 깊이있게 파헤치고 있는 것.

1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씨는 이 소설에 대해 “성공한 여성들의 내면에 깔려 있는 남성성의 존재를 제기하고 싶었다”며 “이들은 대부분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전폭적으로 사랑받은 경험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곧 내면화된 남성성으로 남아 이 사회에서 싸워나갈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주인공 손하영 역시 어린 시절 구박받는 어머니보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편에 선다. 이같은 경험은 주인공의 내면속에 ‘남성성’으로 자리잡아 본인이 갖고 있는 ‘여성성’을 억누르는 기제로 작용한다.

하영은 대학교수이자 무용가로 ‘출세’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뿌리깊이 박힌 이같은 ‘남성성’을 버리지 못한다. 따라서 어머니는 물론 자신의 딸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게 되고 남편에게서도 버림받는 여성으로 내몰린다. 물론 하영은 외도를 통해 자신의 갈급함을 메우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진정한 존재의 충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전통 무가(巫歌)인 ‘청천각시’ 공연을 준비하면서 하영은 심신이 고갈되는 한계에 부닥친다. 작가는 “청천각시를 통해 주인공은 감춰졌던 내면의 여성성에 맞닥뜨리게 되고 이에 따라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를 견뎌내지 못하는 하영이 결국 청천각시 역을 맡지 못하고 제자에게 넘기는 과정을 통해 자기 존재와의 만남이 얼마나 지난한지 보여주고 있다”는 것.

무용가 하영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가 소설의 백미다. “모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딱 맞아떨어지는 모델은 없었지만 워낙 현대무용을 좋아해서 공연도 자주 보고 무용가 친구도 많다”고 말했다. “‘뼈가 삭도록’ 작업해 4년만에 최종 원고를 탈고할 수 있었다”고 밝힌 작가는 “사실 하영처럼 여성에게 ‘내면화된 남성성’의 문제는 심각하다”며 “이를 여성문제의 ‘핵’으로 파악, 구체화시키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보>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kr


"옭매인 여성의 운명…매듭은 스스로 풀어야"
--그 매듭은 누가 풀까, 이경자 장편소설, 실천문학사, 9000원

주인공, 남성중심 사회서 정체성 혼란 겪어
'청천각시' 무속신화 빌려 여성성 긍정 체험

▲ 소설가 이경자씨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여성의 어두운 운명을 해결하는 매듭은 결국 자신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영한기자 younghan@chosun.com)


여성문제에 대해 끈질기게 천착해온 이경자의 이 신작 소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를 고통스럽게 찾아나선 여성의 몸짓을 담았다.
4년 전 여성문제를 다룬 장편 ‘절반의 실패’가 고부갈등, 이혼, 매춘 등 남성우위 사회에서 겉으로 파생되는 문제를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그러한 문제가 생긴 심리적 근원을 파헤치고 있다.

작가는 “남녀 갈등 구조를 전제한 한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삶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여자 대신 남자주인공으로 대체해도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로부터 시작한다. 대학교수인 주인공 손하영은 30대 후반의 무용가로 사회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가정 생활은 파멸 직전이다. 남 보기에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아내나 딸,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은 혼란을 겪고 있으며, 뿌리뽑힌 듯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저 남자는 누구고, 나는 또 누군가. 당신 누구야! 하영은 잠든 척하는 남편을 흔들며 묻고 싶었다. 당신은 누군가. 당신에게 나는 누구고, 내게 당신은 누군가.’(53쪽)

작가는 함경도 무가(巫歌)인 ‘청천각시’에서 여성의 어두운 운명에 대한 상징성을 발견한다. 청천각시는 죽은 이의 영혼에게 저승길을 닦아주는 굿에 사용되는 무가로, 혼인 첫날밤에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신랑 도랑선비를 만나러 가는 청천각시의 피어린 역정과 고행을 담았다. 소설은 이 무가를 소재로 한 무용의 안무를 통해 여성들의 삶에 각인된 운명적인 억압의 틀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권력’ 안에서 강자였던 아버지 편에 서서 같은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처지를 외면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어머니의 처지에 놓이게 된 자신의 모습에 눈을 뜬다. 청천각시 신화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여성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주인공은 그 대상이 아버지건, 남편이건, 아니면 정부(情夫)건 남성(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었던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도는 무가에서처럼 실패로 귀착된다.

주인공이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주인공은 어느 날 꿈에 “치료받아야지”라고 말하는 여자 아이와 숙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 아이는 바로 어린 시절의 주인공 자신으로, 주인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 깊은 상처의 속내를 파헤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청천각시가 산에 오르며 고통받는 과정을 연출하면서, 남자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여성성을 긍정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몸과 마음을 으스러뜨리는 신열에 시달린 끝에 주인공이 다다른 곳은 우주 또는 자연의 모태가 되는 태초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었다.

작가는 “1200장짜리 원고를 세 번이나 썼다가 버린 뒤 비로소 탈고할 정도로 작품을 쓰는 4년 동안 밤낮없이 신열에 시달렸다”며 “주인공 손하영의 좌절과 방황, 그리고 깨달음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몸 전체로 받아들이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男 환상 매듭 女 스스로 풀어라
-이경자 장편소설‘그 매듭은 누가 풀까’-

남부럽지 않은 지위와 명예를 얻었으면서도 공허하고 갈급한 여성. 작가 이경자씨는 사랑과 포용을 모르는 그 여성에게서 ‘내면화한 남성성’을 찾아내고 이것의 치유야말로 진정한 여성의 해방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가 4년동안 공을 들인 장편소설 ‘그 매듭은 누가 풀까’(실천문학사)를 내놓았다.

이 작품에서 ‘매듭’은 바로 이 내면화된 남성성이며 그것을 풀어야 할 주체는 여성 자신이다. 남녀재산분할제가 실시되고 호주제 폐지입법이 국회에 계류되는 등 외형적인 양성평등이 가까워진 현재 시점에서 여성문제의 핵심은 오랜 역사를 통해 여성의 몸에 새겨진 남성성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손하영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현대무용 교수다. 그에게는 남편과 두 딸이 있으나 늘 가정보다 일을 중요시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주부 노릇은 물론 남편과의 일상적 관계조차 완전히 단절돼 있다. 딸들도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실망을 증오와 냉담으로 발전시킨지 오래다. 하영에게 집은 잠자리일 따름이고 자유로운 자기추구를 위해 이혼을 꿈꾸기도 한다. 사생활의 공허함을 외도로 채우려 하지만 그마저 육체적 쾌락에 그칠 뿐이다.

그런 그가 전통무가(巫歌)인 ‘도랑선비 청천각시’를 무용극으로 만들면서 모든 여성들의 삶에 각인된 억압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청천각시는 혼례를 올린 첫날밤 심하게 앓다가 다음날 기약없이 떠나버린 신랑을 만나기 위해 온몸을 기름에 절여 태우고 아흔아홉 굽이의 험산을 넘는 고행을 무릅쓴다. 이때부터 소설은 무용극 ‘청천각시’의 연습과정과 하영의 사생활을 교차시키는 한편 그의 정신적 모태가 된 과거 가정사를 회고형식으로 끼워넣는다.

하영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바람둥이였던 아버지는 툭 하면 어머니를 두들겨 팼다. 어린 하영은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권력을 직감하고 아버지편을 든다. 어머니를 때린 아버지가 “하영이밖에 없다”고 할 때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아버지에게 잘 보이라고 닦달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원망하면서 더욱 아들에게 집착했다.

하영은 일찌감치 결혼이란 도피처를 택하지만 진정한 소통을 경험한 적이 없는 그는 남편과의 관계맺기에 실패한다. 더구나 아내에게 전통적인 여성상을 원하는 남편은 바람을 핀다. 하영은 여성으로서 충만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잃는다. 그것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를 낳았으나 어머니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성공에만 집착해 딸들과 소원해진다.

작가는 이런 하영의 심리적 경험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집착임을 짚어낸다. 청천각시가 좇았던 것이 남편의 실재가 아니라 자기안의 남자라는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하영은 어머니도, 자신도 그런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였음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굴종했고, 폭력을 피해 도망치면서 하영은 그대로 둔 채 아들아이만 업고 나갔다.

하영 역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산 것처럼 보이지만 어머니의 삶을 반복했다. 남편에게 아버지처럼 ‘강한 남성’을 기대했고 애정없는 결혼생활에도 불구, 이혼하자는 말에 절망을 느낀다. 그러나 ‘청천각시’의 삶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그는 산에 올라서 자궁과 비슷한 모양의 바위를 발견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소설은 하영이 지금까지의 삶을 바꿀지 딱히 단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끝맺는다. 하영이 쉽게 바뀐다면 도식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희망과 전환을 예고하는 건 사실이다. 무망한 목표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어리석음은 청천각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무용을 워낙 좋아해서 공연도 자주 보고 무용가 친구도 많다”는 작가는 무용가들의 작업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경향신문〈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그 매듭은…' 아내… 딸… 엄마… 내가 설 자리는
◇그 매듭은 누가 풀까/이경자 지음/334쪽 9000원 실천문학사

소설가 이경자씨(55)가 장편 ‘사랑과 상처’ 이후 4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 소설집 ‘절반의 실패’, 장편 ‘혼자 눈뜨는 아침’ 등에서 여성의 운명과 심리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인간관계를 둘러싼 여성의 문제를 파고든다.

‘괜찮아. 춤추며 살지 뭐. 행복 같은 거, 나한텐 쑥스러워.’

소설의 주인공인 30대 후반의 무용가 손하영은 아내와 엄마, 딸 어느 자리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주변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관계는 온통 매듭이 져 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대화는 사라지고, 두 딸은 춤추는 데만 빠져 있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울한 날, 이따금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지만 번번이 불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기 일쑤. 하영은 삶의 결핍을 춤,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랑으로 채워 보려 하나 공허하기만 하다.

하영의 어린시절 기억에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력한 어머니가 존재한다. 어머니는 남동생만 데리고 몸을 피하고, 술 취한 아버지는 딸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 하영은 권력자인 아버지를 내면에 받아들이는 대신 어머니를 멸시한다.

한편 하영은 서사무가(敍事巫歌) ‘청천각시’를 무용작품으로 연출해 무대에 올리려 한다. 함경도 지방의 무가인 ‘도랑선비 청천각시’를 원작으로 한 이 서사무가는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해 저승길을 닦아 주는 굿으로, 혼인 첫날밤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신랑 도랑선비를 찾아가는 청천각시의 고행을 담고 있다.

‘청천각시’는 남자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는 여성의 고통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청천각시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도랑선비를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영은 맨손으로 험산의 돌부리를 캐내며 저승길을 닦아가는 청천각시의 역정에서 자신을 본다.

이씨는 소설 서두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손하영의 죄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기보다 아주 도망시킨 데 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에게 지은 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자신을 용서하며 마침내 자신과 화해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쓰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동아일보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장편 [그 매듭은 누가 풀까] 펴낸 소설가 이경자

"내가 낳은 두 딸과 나를 여자로 낳아 준 어머니께 이 소설을 바치고 싶습니다 ."
여성주의에 무게중심을 둔 인기작가 이경자 씨(55)가 신작소설 `그 매듭은 누 가 풀까`(실천문학사)를 내놓았다.
`사랑과 상처` 이래 4년 만이다.

이번 작품 역시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성 근원을 탐구 한다.
소설 주인공 손하영은 대학교수 신분을 가진 30대 후반 무용가. 매력적인 외모 에 사회적 명성까지 얻고 있지만 아내로서, 딸로서, 어머니로서 정체성에 혼란 을 겪고 있다. 일상적이고 원초적인 인간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주인공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예요.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남성에 대한 공포감 열등감 분노감이 겹겹이 쌓여 있어요. "

하영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한 뒤 공포감에 휩싸인 자신에게 "하영아 이리온. 아빠는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성장한다.

"대개 여자아이들은 이 순간 아버지를 선택합니다.동성인 어머니를 버리고 집 안 권력자인 아버지를 내면에 받아들이는 것이죠."

`굴절된 여성성`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한 작가는 "일하는 여성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진정한 여성성과 모성성`을 회복하는 장치로 함경도 무가(巫歌)인 `도 랑선비 청천각시`를 작품 속에 끌어들였다.
`도랑선비 청천각시`는 혼인 첫날밤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신랑 도랑선비를 찾아가는 청천각시 고행을 그린 것으로 소설 속에서 하영이 연출하는 무용작품 으로 등장한다.

"청천각시 신화는 여성이 남자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청천각시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도랑선비를 만나지 못하 기 때문이죠."

청천각시 신화를 통해 하영은 자기 삶이 자꾸 뒤틀려 가는 원인이 자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명에 매듭이 지면 암이 생기고 성장이 멈춥니다. 여자의 매듭, 삶의 매듭을 누가 풀어줄까요. 결국 자기가 풀어야 합니다."

작가는 "1200장짜리 원고를 세 편 썼다가 버린 뒤에야 탈고했기 때문에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말한다.

--매일경제 허연 기자, 2003. 12. 8


여성들이여 '삶의 매듭'을 풀어라

“20년 전 발표한 ‘절반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서 여성문제를 다뤘다면,이 작품은 여성문제의 심층구조를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실패’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소설가 이경자(55)씨가 펴낸 전작 장편 ‘그 매듭은 누가 풀까’(실천문학사)는 살아남기 위해 남성처럼 강해져야했던 한 여성무용가의 내면을 통해 커리어 우먼의 복잡한 심리를 분석한 우리 시대의 여성학 보고서다.


소설의 주인공 손하영은 대학교수 신분을 가진 서른 아홉의 무용가. 매력적인 외모에 사회적 명성까지 얻고 있지만 아내로서,딸로서,어머니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하영은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일상에서는 인간관계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남자를 밝히는 여자죠.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남성에 대한 공포감,열등감,분노감이 겹겹이 쌓여 있어요.”

하영은 어린 시절,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손찌검을 당한 뒤 남동생을 달랑 업은 채 가출했던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한다. 정작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가 “하영아,이리와. 아빠 밉지?”하고 말했을 때 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안 무쩌워”하고 응석을 부리며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소설의 한 대목. “하영은 그 나이가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교활했다. 여자의 성장이라는 것이 삶에 얼마나 불이익이 되는지,하영의 영혼이 눈치채고 있었다.” 이때부터 하영에게는 동성인 어머니를 버리고 집안의 권력자인 아버지를 내면에 받아들이는 성격적 뒤틀림이 생겨난다.

“하영은 아버지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으스대며 성장합니다. 반면 어머니를 멸시하죠. 일하는 여성에게 물어보세요. 십중팔구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을겁니다.”

하지만 하영은 혼인 첫날밤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진 신랑 도랑선비를 찾아가는 청천각시의 고행을 그린 무용극 ‘도랑선비 청천각시’를 연출하면서 자신의 삶이 자꾸 뒤틀려가는 원인이 자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씨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랬다. 아주 아득한 것. 빛 같은 것. 자궁 속 열기 같은 것. 고물고물 움직이는 생명 같은 것. 하영은 이 느낌에 마음 붙이고 고개 숙였다. 이 느낌에 몸을 조아렸다. 이 느낌에 자신을 내밀었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래,도랑선비가 진 짐,그가 부리지 못한 짐을 청천각시가 질 것이다,하영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 여자의 텅 빈 자궁 속에 그 여자의 황량한 영혼 속에 청천각시가 움트기 시작했다. 하영은 서서히 자기를 버리기 시작할 것이었다.”

하영은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던 모습들과 하나씩 맞닥뜨린다. 그것은 남편 혹은 가정이라는 사회적 울타리에서 밀려날까봐 스스로의 욕구와 본원적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이었고 가족의 구조속에서 언제나 강자였던 아버지 편에 서서 같은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처지와 입장을 외면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여자의 매듭,삶의 매듭은 결국 자기가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데는 고통이 따르죠. 4년간 밤낮없이 매달린 소설이 책으로 묶여져 나오고 나니 저 역시 해방된 느낌입니다.”

--국민일보 정철훈기자 chjung@kmib.co.kr, 2003. 12. 8.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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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3-12-29 오후 3:20:30

 

'그 매듭은 누가 풀까'라는 이 책은 이경자씨의 여섯번째 장편소설이다.
다소 어두워 보이는 제목으로 시선을 잡게한 저자는
손하영이라는 외면적으론 성공한 여성을 통해 내면에 묶여 있는
가정적 매듭과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과정을 침착하고 열거하고
있었다.

손하영이라는 여자는 사회적으로 봤을때 성공한 무용가이며
대학교수이다.
금전적 고통이 없는 가정에다가 이쁜 딸이 두명이나 있으니까..

하지만 내면을 바라보면 황량한 벌판 그자체다.
신체가 멀쩡하다고 건강한가.. 그건 아닐 것이다.
정신적으로 편파적이고 기형적인 아버지사랑을 받고 자라온 손하영은
어머니의 현실적 고생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이해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의 그릇에 의혹을 가진다.
그런 성장과정은 아무래도 공허한 마음으로 연결되고 애정결핍은
다른 여러 남자들과의 동침으로 메꾸러 하지만 채워지기 만무다.

여기서 일차적 가정의 행복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인생 청사진이
달라진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뻔한 결과겠지만 손하영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당하고,
그런 불쌍한 처지를 딸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 자신의 매듭을 스스로 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며 마지막장에 이르러서는 여성의 모성을
깨닫는 점이고, 그녀 자신의 매듭은 자신이 풀어야 겠다는
용기와 결단이 생겼다는 점이다.

또한, 그런 여성의 정체성의 의문을 푸는 열쇠는 공연의 주제격인
무가인 '청천각시'를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하루밤에 사리진 신랑을 찾는 여인(청천각시)의 고생담을
손하영이 직접 겪음으로써 느끼는 과정이라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무가를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이경자씨의 상세한 무가의 표현과 설명은
난 신비스런 경험으로 받아드려졌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용기를 갖게
되는 사람은 드물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손하영이라는 여자가 이혼을 당하고
아이들을 빼앗기는 현실을 맞게 되더라도 결코 늦진 않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성의 본질적인 의문을 새롭게 다가선 이경자씨의 당당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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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3-12-29 오후 3:22:02

 

여성의 심리와 원형에 대해 쓴 글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물론 이 책은 주인공 손하영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모성원형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결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왜곡되고 상처받은 부모가 치유받지 못하면 또 다른 영혼이 상처입고 힘들어함을 보여주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손혁규-손하영- 그리고 그녀의 딸들 하인과 인영. 이들 안의 분노의 세습. 체바퀴 돌듯 자신의 상처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상처로 인한 아픔을 견딜 수 없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로 상처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중에 부모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아버지 손혁규. 그로 인한 상실감과 분노. 부모가 죽을 때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혼자 되었다는 무서움. 혼자 살아남아야 만 했던 시간들속의 외로움과 공포...... 이런 복잡한 감정들 속에 숨겨진 채워지지 않는 원초적 욕구들. 이로 인한 왜곡된 표현들과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양극된 감정들로 인한 혼란스러움.....

주인공 손하영은 아버지의 이러한 부정적 감정 -분노, 무력함, 외로움, 공허함 등의 또 다른 모습이며 피해자이며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렇다. 그 생존의 모습이 비록 아버지와 같이 뒤틀리고 꺽이고 휘어졌다 해도 그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또 다른 힘을 주고 있다. 아버지 손혁규가 왜곡된 감정에 포로가 되었다면 손하영은 포승을 풀고 날아오른 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지은이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모성원형을 되찾음으로서 이 모든 것을 넘어 서는 것으로 풀고 있지만, 나는 손하영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청천각시'를 통해 자기를 통찰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통해 자기를 알아가고,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밟아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폭군 아버지로 인한 공포로 떨고 있는 다섯살 하영을 성인이 된 하영이가 보듬어주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왜곡된 관계에서 어머니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하영 자신을 인정하고, 엄마와도 아버지와도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소외되고 왜곡되어 혼란스러운 하영을 인식하고, 자신을 내팽겨친 엄마를 자신안에서 찾음으로 여자인 하영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영 자신은 자신을 한 인간으로 보듬어주고,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정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영이 마지막으로 외친 '나한테 있어'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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