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김영현 논쟁’을 일으키며 민중소설의 한 지평을 열었던 중견 작가 김영현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폭설』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家의 형제들』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끝을 모르는 탐욕과 물신의 현시대와 인간 존재의 심연을 향해 도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악령과 신성, 그 분리할 수 없는 양면성을 지닌 고뇌에 찬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야심찬 문학적 도전이라 할 만한 『낯선 사람들』은 한국문학사의 성취로서 평가될 것이다.

음탕하고 돈 많은 수전노 늙은이가 자기 집에서 잔혹하게 살해된다. 그에게는 후처와 배다른 아들들과, 아들인지 손자인지도 구별이 안 되는 핏줄까지 포함한, 추악하고 원한 서린 가족관계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범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다들 아버지에 대한 강한 살의를 품고 있었기에 아무도 이 살인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악령의 화신 같은 인간에게도 선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고, 평생 순명을 맹세하고 성직자의 길을 가던 아들은 그 길에서 구원을 찾지 못하고 고뇌한다. 한 핏줄을 나눈 개개인의 이런 극심한 자기분열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家의 형제들』을 방불케 한다. 어쩌면 작가도 그것을 의식하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시대를 초월해서 진부해질 줄 모르는 그런 재생산성이야말로 위대한 고전의 힘일 테니까.. _박완서(소설가)
작가 김영현의 문학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또 넓어졌다. 시대의 불의와 어둠을 뜨겁고 냉철하게 응시해온 그의 치열한 문학 혼은 이 야심적인 소설에서 또다시 새로운 빛을 발한다. 끝을 모르는 탐욕과 물신의 시대, 그 참담한 욕망의 진구렁 속에서 한꺼번에 부패하고 타락해가는 인간군상을 향해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정녕 우리의 생은 가치 있는 그 무엇인가?” 이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물음이야말로, 오늘 당신과 나,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두렵고도 준엄한 질문에 다름 아니다. _임철우(소설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추리적 기법으로 그린 정통 문학의 당당한 성취
이야기는 조용한 소읍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전직 마을금고 이사장을 지냈던 최문술이 자신의 집에서 칼에 찔린 뒤 목 졸려 죽은 것이다. 이를 그의 두번째 아내인 성경애가 발견하고 신고한다. 강력계 반장 장국진은 탐문 수사 끝에 최문술의 전처 소생인 큰아들 최동연을 떠올리게 되고 최동연은 결국 존속살해범으로 체포된다. 그러나 최문술의 사십구재에 둘째 아들이자 최동연의 동생인 성연이 나타나면서 이미 종결되었던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수도원 신학교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성연은 처음부터 동연이 범인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홀로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최문술의 추악한 과거가 드러나고 여기에 형 동연도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성연은 깊은 고뇌와 번민으로 괴로워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국으로 치달아갈 뿐이다. 『낯선 사람들』은 사상적․종교적 문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유세계를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낸 미완성 걸작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家의 형제들』을 떠올리게 하는 일면이 있다. 신에 대한 물음,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쟁, 지상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에 대한 고뇌, 이복형제와 새어머니와의 원초적 갈등과 욕망이라는 구조적 차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작가 김영현이 오랫동안 궁구해온 철학적․신학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국진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려는 성연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말, “나의 생은 과연 가치 있는 그 무엇일까?”는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되새겨보는 질문이 아닐까.
끝을 모르는 탐욕과 물신의 현시대를 향해 던지는 도저한 질문!
소설 집필을 마친 후, ‘작가의 말’로 썼던 다음과 같은 장문의 메모는, 이 작품의 진정성 측면에서 다른 어떤 설명보다 진실하다.(그러나 작가는 ‘말’의 ‘덧없음’을 이유로 들며 짧고 간결한 글로 ‘작가의 말’을 대체했다.)
“나는 늘 일회적이고 덧없는 생의 너머에 그 무언가, 신이든 별이든, 혹은 다른 어떤 이름을 가진 것이든,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그것을 헤겔 식으로 이성(reason)이 자기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역사라고 믿기도 했고, 때로는 초월적인 어떤 것, 우주의 심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절대적인 자유 같은 것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 한, 마치 유리병 속의 나방처럼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언제나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절, 나는 한때 ‘이성’의 힘을 믿었다. 혹독한 고문과 단식을 하면서도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이성에 대한 믿음조차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다. 진보는 하나의 허상이며 가나안처럼 허황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회의와 함께 인간은 처음부터 구원, 혹은 완전한 해방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는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탐욕과 악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훨씬 가까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모든 경전은, 성경을 포함하여, 인류가 지닌 탐욕과 피의 기록 이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카인의 낙인은 이미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의 이마 위에 찍혀 있는 잠재된 살인 충동의 상징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여 나는 생각했다. 나의 생은 이 벗어날 수 없는 무의미함과의 대결이었다고. “나의 생은 과연 가치 있는 그 무엇일까?” “나는 과연 이 맹목적인 생의 의지로부터 최소한의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불을 찾아갔던 태고의 인류들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긴 호흡 끝에 작가 김영현은, 숨이 막힐 듯 광대한 우주의 불가사의 속에서 신의 그림자를 발견한 듯하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의 순정한 영혼, 성연의 입을 빌려 말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 먼지와도 같은 지상이야말로 어쩌면 황량하고 텅 빈 우주 속에서 신이 꿈꾸었던 유일한 천국이 아니었을까,라고, 그리하여 성연의 머리와 어깨를 언제나 한결같은 각도와 온기로 비추어주는 ‘안나’를 통해 지상의 신은 바로 ‘사랑’ 에 다름 아닐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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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195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 14인신작소설집에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소설 『풋사랑』, 『폭설』, 시집 『겨울바다』, 『남해엽서』, 『그후, 일테면 후일담』, 시소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1990년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어떤 죽음_009 존속살인범_033 늙은 신학생_056 오래된 기억들_089 어둠의 심연_104 요한 신부_125 죄의 근원_144 바보 기덕이_157 대동여인숙_178 안개 속으로_204 증오의 기원_230 사건의 재구성, 혹은 생의 의미에 대한 몇 가지 질문_267 그리고 미소를_290
발문 | 박완서_301

변혁운동 지나 혼돈 속으로 간 <낯선 사람들>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7. 01. 12.) 낭만적 리얼리즘 작가 김영현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 ―― 조용호 기자, 세계일보(2007. 01. 12.) 추리기법으로 풀어낸 삶의 의미 - 김영현 장편 ―― 김정선 기자, 연합뉴스(2007. 01. 12.) 김영현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 ―― 신동립 기자, 뉴시스(2007. 01. 13.) 사랑만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김영현 추리소설 '낯선 사람들' ―― 김지영 기자, 동아일보(2007. 01. 19.) 추리소설을 모티브로 인간의 탐욕에 질문 - 김영현의 ‘낯선 사람들’ ―― 고미정 기자, 시사포커스(2007. 01. 15.) “내 문학의 터닝포인트” ―― 박홍환 기자, 서울신문(2007. 01. 19.) '낯선 사람들' 낸 소설가 김영현 "피의 역사 속 구원은 사랑에…" ―― 박선영 기자, 한국일보(2007. 01. 15.) 신이시여, 이것이 인간이오리까…김영현 ‘낯선 사람들’ ―― 한윤정 기자, 경향신문(2007. 01. 17.) 김영현 '낯선 사람들' - 도스토예프스키적 '사랑' 분석 ―― 최학림 기자, 부산일보(2007. 01. 22.) 사랑이 없다면 이 비극을 어떻게 견딜까 ―― 김태훈 기자, 조선일보(2007.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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