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워라, 꽃!』은 찬란하거나 근사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방 중소도시 ‘바닥’에서
‘바닥 같은’ 시를 쓰며 살아가는 한 시인의 생활사이다. 그의 생각은 너무 여리고, 또한 걸음은 생각보다도 느린지라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들이 그의 눈먼 더듬이에 걸려든다. 그는 더듬거리며 “노래도 아니 되고 허물로도 아니 남을”, “죽도 밥도 찬거리도 되잖는” 허물 같은 시를
쓰고 그것을 남몰래 뜯어 먹으며 살고 있다. 시의 중심은 생활의 변두리라는 것을, 영혼의 주변부라는 것을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안의 시는
시류(時流)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 제3의 지대에서 시류(詩流) 또한 의식하지 않은 채, 응축된 언어의 몸짓으로 홀로 외로이 필생(筆生)의
근황을 타전하고 있다._박후기(시인)
이 아름다움의 공화국은 모질도록 순한 열정의 소산이다. 저마다 빼어난 삼라만상이 들고남과
높낮이 없이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맑은 이목을 씻어 그들의 속살과 속삭임을 어질게 드러내려는 시인의 고투가 선연하다. 그는 세상에 대해 아무
말 안 하지만, 그의 시는 말없이 할 말 다하고 있다. 시인은 시를 쓸 뿐 시가 아닌 것들은 몸으로 때우는 모양이다. 시인이 온몸으로 진창을
걸레질한 덕분에 세상의 대청마루가 환해진다. 나는 그가 쓰지 않는 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가 닦아놓은 대청마루에 앉아 진창을 쳐다본다. 시의
몸이 거기 다디달게 있다. _김중식(시인)
‘나’와
치워야 하는 꽃 사이의 균열
이안의 두번째 시집 『치워라, 꽃!』에는 첫 시집에서 느껴졌던 따뜻한 정감의 태도가 여전히 유지된다. 그러나
시인은 “고등학교까지 교과서에 충실함으로써/고향과 관련한/모든 것을 스무 살 전에 버릴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이제 “버리고 떠나온 고향을/뼈
빠지게”(「꿈을 적다」)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자신의 비애를 드러낸다. 즉, 뼈 빠지게 꿈꾸는 ‘그곳’과 지금의 ‘이곳’ 사이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분열적 자각을 거듭한다. 그에게 그곳과 이곳, 원경과 근경 사이는 결핍이 만들어낸 심리적 거리이며 자아 분열의 징표이기도 하다.
시 「연필을 깎는 동안」에 등장하는 화자는 아주 오래 살아온 듯한 낯익은 집의 마당과 마루와 아궁이를 몽상하며 연필을 깎는다. 그러나
몽상의 끝에 “그러나 무슨 심산가/정작 집에 닿아서는 집을 등지고/세상의 불빛 아득히 건너다본다/먼 어둠 너머/나를 등지고 내게로
돌아오는/연필을 깎는 동안”이라고 말한다. 이때 자아는 “먼 어둠 너머”에 있는 자아와 현실로 돌아오는 자아로 분열된다. 자의식에 사로잡힌 자는
자신에 대해 불편함과 불만스러운 기분을 지닌 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자이다. 그러나 이 불행한 감정은 자신의 진실과 거짓의 실체를 분명히
확인하고자 하는 심리적 균열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섣부른 도취나 낙관보다 진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식전 산책 마치고
돌아오다가/칡잎과 찔레 가지에 친 거미줄을 보았는데요/그게 참 예술입디다/들고 있던 칡꽃 하나/아나 받아라, 향(香)이
죽인다/던져주었더니만/칡잎 뒤에 숨어 있던 쥔 양반/조르륵 내려와 보곤 다짜고짜/이런 시벌헐, 시벌헐/둘레를 단박에 오려내어/톡!/떨어뜨리고는
제 왔던 자리로 식식/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식전 댓바람에 꽃놀음이 다 무어야?/일생일대 가장 큰 모욕을 당한 자의 표정으로/저의 얼굴을 동그랗게
오려내어/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퉤에!/끈적한 침을 뱉어놓는 것이었습니다/(「치워라, 꽃!」 전문)
이안에게 ‘꽃’은 생명적 숨길에
대한 비애와 존중의 관념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한 생이 피고 지는 일이 “불덩이 반찬을 먹고”(「茶毘」) 가는 일과 같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삶은 그러한 관념보다 더 모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 「치워라, 꽃!」은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시벌헐, 시벌헐” 욕을 하며
“식전 댓바람에 꽃놀음이 다 무어야?/일생일대 가장 큰 모욕을 당한 자의 표정으로” 거미는 화자 앞에 침을 뱉는다. 이 시에는 분명 ‘그따위
생각은 이제 집어치워’라는 질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또 다른 시 「바닥」에서 보이는 “그러나 나는 또 바란다/차라리 주먹에 가까운 당신
손바닥이 언제나 내 낯바닥을 기억해 주기를/그리하여 내 시(詩) 바닥이 언제나 당신 손바닥을 향하여 있기를”과 같은 구절에서도 자신에 대한 호된
성찰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허물과 생것, 경제와
시 사이에서 목마른 숨길
자의식이 결여된 시 쓰기는 자기기만적 유희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시인은 자신이 왜 시를 써야 하며, 무엇에
대해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 하는 존재이다. 이안은 이 시집에서 시와 자신과의 관계, 시와 삶과의
관계를 메타 시의 형태로 문제화함으로써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들춰낸다.
마당 가 돌무더기에 흰 끄나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뱀 허물이다 머리를 땅에 박고,/이리로 저리로 요렇게 조렇게 들어가셨소/내가 그 증거요!/온 허물로 가리킨다/이건 단순한 허물이
아니라/뱀에 의한,/뱀이 썼던 허물이 분명하다/한마디로, 이 안에 뱀이 있었다는 것/저 안 어디쯤/진짜가 있다는 것/울고불고
마지막까지/뒤집어쓰고 살아온 시를 놓아주고/생것이 사라져간 쪽을 향해/입 꽉 다물었다(「유고시」 전문)
「유고시」는 뱀이 벗어놓은
허물을 소재로 하여 시와 존재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사유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허물과 생것은 현상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이 같은 논리를 시인과 시에 대입한다면 시인에겐 시인의 존재성을 증거해 주는 허물이 시이다. ‘뱀에 의한, 뱀이 썼던 것’이 허물이라면 ‘시인에
의한, 시인이 썼던 것’이 시인 것이다. 뱀의 허물이 진짜를 증명해주는 역설을 만들어냈듯이 자신의 시가 존재의 진실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에
대해 시인은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까지 연봉 십만 원짜리 시 원고료 생활자로서 누리던 은은한 쥐뿔의 당당함을 등지고
논술이다 책 읽기다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을 뜯어먹으면서 이렇게 가외의 경제를 쌓아 올리다가는, 영영 사태의 핵심을 내 이득을 제외한
자리에서만 말하게 될 것 같아, 적이 두려워졌던 것이다//가난하다고 해서 꼭 반듯하다는 법은 없고/배부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시가 써지지 않을 때는/과분한 경제가 내리누르는 영혼의 가위눌림/한도 초과의 경제를/부른 배 쓸어내리며 꺼어억!/역겹게 시비하여 보는
것이다(「시인의 경제」 부분)
시 「시인의 경제」에서는 자신의 부조리를 진단하는 몇 겹의 자의식을 읽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이
시의 시적 자아를 괴롭히는 것은 가난한 시인에서 교활한 교사 아닌 교사로 전락했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그에게 이러한 인식보다 더 큰 괴로움과
두려움은 이러한 기만적 삶의 방식이 “사태의 핵심을 내 이득을 제외한 자리에서만 말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있다. 「시인의 경제」의 시적
자아는 자신의 허위적 삶의 방식에 대한 자의식을 “역겹게 시비하여보는” 것으로 규정한다. 다른 사람과 변별되는 자기 성찰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과분한 경제가 내리누르는 영혼의 가위눌림”을 이런 정도의 포즈로 반성함으로써 쉽게 해소하려 하는 자신이 못마땅한
것이다. 시인은 자신에 대한 이 같은 역겨움을 다른 시에서 “아,/지금 내 몸이 너무 달다”(「홍시」)라는 고백으로 암시하기도 한다. 기만적
자아와 자기기만성을 반성적 자아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해소하려는 자아, 그 둘 다에 대해 시비를 거는 자아의 치열한 충돌을 내면화하면서 이안은
자신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자기 검열과 그것을 감행하는 자의 고달픈 시간을 시인은 “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로
상징화한다.
한 달 만에 들어온 시골집 벽/시계가 죽어 있다/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숱한 시간을 보아왔으나/이런 시간은 처음
겪는다/평생을 바쳐 쓴 시간이/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라니/세 시까진 불과/삼 분 삼십사 초/아니다, 이십육 초는 거두절미/이십오 초를
건너/이십칠 초에 맞섬으로써 비로소/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다/그러므로 둥근 시간이여,/생은 어디에서 멈추어도/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벽을 깎아지른 시간이다 (「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 전문)
이안은 죽어 있는 시계를 보며 한 존재가 살아내는 시간의 의미를
묻는다. 이때 “평생을 바쳐 쓴 시간”이 고작 “두 시 오십육 분 이십육 초”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허탈함을 딛고 그는 “이십육 초”의 의미를
재정립한다. ‘이십오 초’와 ‘이십칠 초’ 사이에 놓여 있는 ‘이십육 초’는 ‘건너다’와 ‘맞서다’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존재의 시간이다. 이
팽팽하게 긴장된 순간들에 의해 인간의 시간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벽을 깎아지른 시간”의 가파름을 그는 지금 건너며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그는 연필을 깎고,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또 ‘꽃’을 볼 것이다. “문득/저렇게,/있어도 좋고/없어도
무방한/것이//내 안에 또한 아득하여,”(「메꽃」) 그것들을 뼈 빠지게 그리워하며 그는 또 시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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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인은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2편의 시를 발표하고, 1999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목마른 우물의 날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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