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종환의 첫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25여 년. 시인은 아픈 몸과 마음 쉴 자리를 찾아, 속리산자락 구구산방에 터를 잡자 ‘동시’가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그저 꽃나무들과 살다 보니, 산토끼 다람쥐와 어울려 지내다 보니, 동시가 찾아왔노라고 심상하게 말하지만 기실, 그가 동시와 만난 것은 불시의 일이 아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였던 「감자꽃」 시인 권태응을 알리는 데 주력하는 한편, 오장환의 숨은 동시를 발굴해 책 『바다는 누가 울은 눈물인가』(고두미, 2006)〕를 엮어낸 그는 외진(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동시들을 보듬어 다시 세상 속에서 뛰어놀게 한 동시의 오랜 벗이었다.

자연 속에서 만난 ‘동시’ ―훼손되지 않은 고향 땅에 이르는 통로
이안 시인은 『누가 더 놀랐을까』의 해설에 이렇게 썼다. “시인이 동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 이렇게 자연 속으로 생활과 사유의 공간을 옮긴 이후부터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그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보다 더 낮은 마음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며,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어린이를 향한 시의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금낭화는 너무 예뻐서 이름을 알게 된 꽃
제비꽃은 내가 먼저 다가가 이름 부른 꽃
민들레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꽃
민들레, 제비꽃, 금낭화 이름 부르면
꽃들은 고개 돌려 나를 쳐다보지요
나도 사람들이 내 이름 부르면 기분이 좋아요 ―『이름』
“더 낮은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본다는 뜻이리라. 어린이의 눈앞에서는 모든 사물이 새로운, 태초의 것으로 자리잡기에 훼손되지 않은 마음의 ‘기원’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도종환은 심신(心身)이 ‘자연’이라는 기원에 들었을 때, ‘세상의 기원’이자 ‘마음의 고향’인 어린이의 세계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놀이 속에서 반짝거리는 생명들
농촌 어린이의 일상을 그리는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에서 자연은 끝없이 살아 움직이는 놀이의 현장이자 놀이친구이다.
비 맞는다 옷 젖는다 소리치시지만
비 오는 날 물장난 진짜 재밌죠
사방팔방 물 뿌려도 표시도 안 나고
젖은 옷 젖은 몸 더 젖을 것도 없고 ―「물장난」
이 시의 주인공은 “젖은 몸 더 젖을 것” 없이 빗물과 하나가 됐다. 부러 밟지 않고는 못 배겨 물웅덩이를 텀벙대는 어린이의 물장난은 바로 그 반짝이는 생명의 증거다. 도종환 동시의 어린 주인공들은 이렇게 생명력을 피력하며 ‘놀이’를 즐긴다. 그 건강한 유희성의 렌즈를 통해 동시집을 가만 들여다보면, 심지어는 매를 맞고 우는 상황(「대나무 활」)마저도 ‘내가 만약 기절했다면?’이라는 가정과 상상 속에 펼쳐지는 또 하나의 작은 연극 놀이가 된다.
연못에 보름달 환하게 떴다 산개구리들 몰려나와 달 갖고 놀다가 그만 조각조각 깨버렸다
“조심하라고 그랬지!” “오늘 벌써 몇 번째야!”
엄마 개구리 소리치며 혼내다가 하늘 보니 달이 그대로 있다 연못에도 보름달 그대로 있다 ―「보름달」
이 시를 읽는 어떤 이는 돌과 나무를 가지고 놀면서도 정령으로 섬기었던 옛 시절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동시가 던지는 감흥은 어린 산개구리들이 연못의 달을 갖고 논다는 점이다. 연못 한복판에 기우는 희고 예쁜 공을 두고 엄마 개구리는 가만두고 보지만, 어린이들은 건드리다 깨뜨린다. 어린 생명들은 제 마음속에서 북받치는 경이로움을 몸 자체로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대범하다.
고추밭을 매다가 엄마얏! 지렁이 명아주 뿌리에 끌려 나와 몸부림치는 지렁이
배춧잎을 솎아주다 엄마야, 벌레 좀 봐! 고갱이에 누워 자다 몸을 꼬는 배추벌레
지렁이랑 나랑 누가 더 놀랐을까 배추벌레랑 나랑 누가 더 놀랐을까 ―「누가 더 놀랐을까」
“엄마얏!”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일까? 이 비명소리는 놀라움과 또 다른 놀라움의 흥미진진한 줄다리기가 시작되기 직전 양쪽에서 동시에 터뜨린 신호탄이다. 시인은 배추밭 한복판에서 질문하는 이 꼬마 철학자를 통해 어린이다운 것은 전복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세상 자체를 기성품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어른의 시각으로 볼 때 동시집이란 시대의 경향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긍정적인 메시지’, ‘자연합일’, 구태의연한 ‘의인법’ 등의 성분으로 이루어진 어린이 책일 뿐이지만, 바로 이 시는 동시가 세계에 대한 진정한 놀라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전복성이야말로 동시의 미래라는 데 방점을 찍게 한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다 들어와 자기 전에 한두 편씩만 이 동시를 읽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겠습니다.”
그의 바람을 담아,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구구(龜龜)산방’에서 보내온 이 동시집 중에는 ‘고라니 아사삭, 너구리 사브락’대는 밤, 바람과 별이, 그러니까 자연이라는 엄마가 들려준 자장가 다섯 편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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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선생님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시를 써온 시인입니다. 그동안 『접시꽃 당신』,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의 시집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등의 산문집, 『바다유리』, 『나무야 안녕』 같은 동화책을 냈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충북 보은의 시골로 내려와 지내면서 이번에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를 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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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 이은희 선생님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 『선생님 나도 업어주세요』, 『우리고전인물』 등이 있습니다. 현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

제1부 채송화는 작은 꽃
채송화 빙판 길 물장난 소독차 노는 소리 숨바꼭질 어른들 매실 대나무 활 누가 더 놀랐을까 어떤 차 이사
제2부 병아리 싸움
병아리 싸움 병아리 자매 동물농장 나비 닭대가리 어미 새, 아기 새 파리 썩은 감자 보름달 개구리 소리 어디서 잘까 기러기 바구미 다람쥐
제3부 도라지꽃밭
도라지꽃밭 지는 별 진달래 이름 생강나무꽃 무궁화 소나기 반딧불이 바람 해 아기잠자리 밤별 겨울새 발소리
제4부 아기 울음소리
자장가 2 자장가 3 자장가 4 자장가 5 자장가 6 어떤 개인 날 여름 한낮 달걀 도둑 포플러 부슬비 경운기 어린 모 소리 원추리꽃 여럿이 사는 집

도종환이 자연 속에서 건진 童心 ―― 고미혜 기자, 연합뉴스(2008. 6. 23.) 도종환, 동시집 냈다‥채송화·병아리·도라지꽃·아기울음 ―― 강경지 기자, 뉴시스 (2008. 6. 24.) [신간클리핑]누가 더 놀랐을까 ―― 신혜정 기자, CNB뉴스(2008 . 6. 24. ) 자연에서 놀다보니 동시가 찾아왔네 ―― 고유리 기자, 한겨레(2008.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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